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는 착각 중 하나가 우리나라 사학계가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낭설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는 의문이네요. 물론 그 형태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단군으로 대표되는 고조선의 존재는 중국과 우리의 여러 문헌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실제 발굴되고 증명 받은 고조선의 유물이 가장 확실한 근거지요.
물론 개중에는 확실한 근거 없이 고조선의 것이라고 억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소개해드릴 평양의 단군릉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네요.
단군릉은 평양직할시 강동군에서 발견된 유적입니다. 사실 이 존재 자체가 조작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게, 고려나 조선의 기록에서 평양에 단군릉이 있다는 것이 종종 언급되지요.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그 존재가 확인됩니다. 즉,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단군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란 겁니다.
근데 왜 이게 문제가 된다고 말하는 걸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 첨부한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사진은 1947년 당시의 단군릉입니다. 평이한 모습이지요. 근데 현재 단군릉은 두 번째 사진처럼 되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차이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현재의 단군릉은 대리석을 바르고 조각을 세워 무슨 피라미드처럼 개조를 해둔 상태입니다. 원래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지요.
실제로 북한은 단군릉을 복원했다고 말하지 않고 개건했다고 말합니다. 근데 이 정도의 개조는 개건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뭐한, 일반적인 상식을 한참 뛰어넘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현재의 단군릉은 1994년에 김일성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간혹 두 번째 사진을 보고 이집트 등지의 피라미드가 우리 민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시 강조하지만 저건 1994년에 만들어진 겁니다.
재밌는 건 북한이 원래 공산주의 국가였던 만큼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따랐습니다. 즉, 단군을 봉건적 세력에 의해 실존 인물처럼 과장된 존재로 해석했던 것이지요. 근데 단군릉 복원 이후에는 ‘종래의 신화적 인물이었던 단군이 사실은 실존 인물이며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식으로 말을 바꿔버립니다. 아마 북한이 한반도의 정통 계승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겠지요.
남한의 학자들은 단군릉의 원래 모습, 그러니까 개조되기 이전의 모습이 전형적인 고구려의 석실무덤 양식이며 내부에서 발견된 금동관도 고구려의 것이기에 실제로는 단군릉이 고구려 지방귀족의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과거 고려나 조선의 단군릉 기록들은 무덤 구분법을 알지 못한 옛사람들이 오래된 무덤이라 ‘단군의 무덤이 아닐까?’ 정도로 추측하고 기록으로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요.
물론 남한의 학자들이 직접 방문해서 확인한 건 아니고 94년에 북한에서 발행한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론문집>의 내용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 뿐입니다. 여기에서도 단군릉이 고구려식 무덤이며 금동관 역시 고구려의 것임을 명시하고 있지요.
근데 이 연구가 좀 웃긴 게 자신들이 시행한 연대측정법에 따르면 발견된 유골이 5000년 전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5000년 전에 고조선 사람들이 이곳에 단군을 묻었는데, 훗날 고구려인들이 이걸 발굴한 다음 자기들의 무덤 양식으로 다시 장사지냈다는 괴이한 주장을 하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재밌는 건 이 단군릉을 통해 북한 학계가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돌아가는 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였냐는 논의는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한반도 중심설, 요동 중심설, 이 둘을 절충한 중심지 이동설 등이 있지요.
북한 학계의 정설은 원래 요동 중심설이었습니다. 근데 이게 학계의 연구 성과가 반영돼서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당시 북한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한창이던 중에 김일성이 ‘요동이 맞는 것 같지 않나?’라는, 사실상 어명을 내리며 결정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주장에 반박한 학자들은... 사라졌습니다. 정말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빈 대학 고고학과 출신으로 북한의 고고학연구를 이끌었던 도유호입니다. 그가 저술한 <조선 원시 고고학>은 우리나라의 고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지요. 하지만 도유호의 학설, 그리고 고조선 한반도 중심설은 반동적인 이론이라는 오명을 얻으며 사장되었고, 1965년 이후 그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단군릉을 거대하게 다시 짓고 단군을 추켜세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 북한에서 사장되었던 한반도 중심설이 1994년 이후 다시 정설로 채택됩니다. 그냥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학설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거지요. 물론 김일성이든 김정일이든 김정은이든 제대로 역사학을 배운 인간은 아닙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동강 문명이란 걸 주장하면서 세계 5대 문명 같은 걸 주장하기도 합니다. 근데 북한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이 연구 보고서 같은 건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보도 자료만 내보내니 별 신빙성은 없어 보입니다. 정치권에 학계가 휘둘린다는 건 웃기면서도 씁쓸한 일이지요.
기사출처 : 5분 한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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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