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건국의 산실 경주 표암

표암이란 박바위 또는 밝은 바위를 뜻하는 것이다. 기원전 117년 진한 땅 표암봉에 알평이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 해서 표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경주 표암

서라벌의 북쪽을 지키는 소금강산은 신라의 4대 영산중의 하나이다.

이 산 남쪽 기슭에 표암이 자리하고 있다. 표암이란 박바위 또는 밝은 바위를 뜻하는 것이다. 기원전 117년 진한 땅 표암봉에 알평이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 해서 표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표암
표암 전경


알천 양산촌 알평, 돌산 고허촌 소벌도리, 무산 대수촌 구례마, 자산 진지촌 지백호, 금산 가리촌 기타, 명활산 고야촌 호진. 신라 6촌의 촌장은 모두 천손강림(天孫降臨)의 설화를 가졌다.

기원전 69년 삼월 초하루 6촌장이 알천 언덕에 모여 나라를 세울 것을 의논하였다. 그때 마침 남쪽 양산 아래의 나정에서 혁거세가 나타남으로서 그를 왕으로 삼기로 하고 키웠다. 기원전 57년 혁거세를 왕위에 추대하고 신라를 건국하였다.

양산촌은 유리왕 9년 급량부로 고치고 이씨 성을 하사하였다. 알평은 字는 천서(天瑞) 號는 표암 시호는 문선공 또는 은열왕이라 전한다. 마한 태조 기준의 딸인 태화공주 기씨와 혼인하였다. 표암유허비에 보면 박바위는 경주 이씨 시조 알평공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곳이다.


광림대


순조 4년(1804)에 후손 경일이 현인을 공경하고 조상을 추모한 곳이라는 내용으로 비문을 짓고 형조판서 집두가 쓰고 장령 진택이 이 비를 건립하였다고 했다. 원래 표암 앞을 흐르는 동천가에 있었는데 홍수의 피해를 입게 되어서 187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광림대의 석혈은 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목욕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경주 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로서 광명이세(光明理世)의 이념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큰 뚯을 밝히고 신라의 화백회의라는 민주정치제도가 시작된 유서 깊은 곳이다.

1925년 표암재가 건립된 뒤 매년 3월에 그 뜻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11년 표암의 암벽면에 암각화와 2행 13자의 음각 명문이 발견되었다. 암각화는 인물과 삼층탑, 당간지주 등이 그려져 있어 사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명문의 내용은 "천보 2년 만월부인 간자상세아"로 확인된다. 천보 2년은 제35대 경덕왕 2년(743)에 해당되는데 이는 곧 경덕왕비 만월부인이 표암이 신라 역사에서 차지하는 신성성에 기대어 사찰도를 그려놓고 대를 이을 아들 얻기를 부처님께 빌었다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정태상ⓒ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