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필 라이프 스타일 ‘규방문화’ 현대로 들어오다

현대에 다시 피어나는 규방문화는 오랜 시간 제한되었던 예술혼의 한 발현이다.

조선 필 라이프 스타일 ‘규방문화’ 현대로 들어오다

규방은 단순한 실내공간이 아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창조적 예술 작업실이 되었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한 탓에 만들어진 문화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 삶을 수용하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예술과 문화활동을 해 나갔다. 현대에 다시 피어나는 규방문화는 오랜 시간 제한되었던 예술혼의 한 발현이다.


01.조영석 <사제첩>에 수록된 바느질 모습  /  02.자수주머니 ⓒ숙명여대박물관



창조적 예술 작업실, 규방

규방(閨房)은 사전적인 의미로 ‘규수들의 방’ 또는 ‘여자들이 거처하는 안방’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가옥 구조를 보면 대문과 중문(안채로 통하는 문)이 약간 비켜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객이나 외부인의 출입 시 안채를 시각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대문채가 있는 바깥마당을 지나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부분 사랑마당과 사랑채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은 가장이 거처하는 곳으로서 여성들이 사용하는 안채와도 구별되어 있다. 조선시대 여성은 외출을 금지할 정도로 사회적인 활동이 철저히 제한되었으며, 단지 가정에서 내훈서를 중심으로 유교정신에 입각한 가정 내 범절과 문자를 배우고 가사기술을 배우는 것이 전부였다.

특히 ‘남녀칠세부동석’이 가르치듯이 내외법이 심하였고 여성의 외출이 금지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거의 집안에서 했으며 그 까닭에 여성은 조용히 안방에 들어앉아 바느질을 익히며 골무, 바늘꽂이, 조각보, 주머니 등 소품에서 의복, 병풍 등 대작(大作)에 이르기까지 생활용품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옛 여성이 머물던 규방은 단순한 실내공간이 아니라 창조적 예술 작업실이었다.

03,04.함받침보 ⓒ한국자수박물관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에는 “아들을 낳으면 상 위에 누이고 구슬을 주어 놀게 하고, 딸을 낳으면 상 아래 뉘어 실패를 가지고 놀게 한다”라고 되어 있으며, 성종 3년(1472)에 소혜왕후는 『내훈(內訓)』에서 여자가 지켜야 하는 것을 설명하며 “열 살이 되면 여자는 실과 골풀을 다스리며 베와 비단을 짜고 곱고 가는 끈이나 굵은 실을 꼬며 여자의 일을 배워서 의복을 만들어 바치게 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성은 나이 10세 전후가 되면 바늘을 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사가(私家)에선 침모(針母)가 바느질을 전담하고, 궁중에도 침방(針房)이 따로 있었지만 침선(針線, 바느질)은 모든 여성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조선시대 여성은 정치·사회뿐만 아니라 예술적·지적 분야 등 공적인 세계로부터 차단되고 소외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했으며, 가족들을 위해 정성과 염원이 가득 담긴 생활용품을 만들면서 복을 빌고 이를 통해 조용한 즐거움과 보람을 찾았다.여성은 규방에 모여 바느질과 자수 등으로 복식이나 소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들의 솜씨와 섬세한 미의식을 표현하고 정신적 자유를 추구했으며,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연히 ‘규방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규방문화는 여성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문화라 할 수 있다.

05.모란문 수보 ⓒ한국자수박물관   /  06.바늘집노리개 ⓒ한국자수박물관



일상의 생활 예술, 규방공예를 꽃피우다

규방공예품의 대표적 아이템인 조각보는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천을 하나하나 공들여 이어붙이면서 복을 기원하고 정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들 조각천이 이루는 세련된 색채 감각과 면의 구성은 하나의 조형작품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선한 감각으로 빛나고 있다. 물건의 용도에 따라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한 밥상보, 이불보, 옷감보, 책보, 패물보, 받침보 등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조각보를 보면 모두 조형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색채와 형태, 구성의 조화로움이 세련되고 아름답다. 보잘것없는 천 조각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탁월한 미적 감각은 조각보를 예술작품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조각보 외에도 조각천을 활용하여 골무나 실패, 바늘꽂이, 주머니 등 생활소품도 많이 볼 수 있다.

규방공예 기법 중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기법 중 하나인 자수(刺繡)는 오늘날 용도와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 발전하여 독자적인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멋을 살리면서도 그 형식에서는 벗어나 현대감각에 맞게 수를 놓기도 하며, 다양한 소재와 형태, 색채, 기법을 사용하여 추상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특히 실용적으로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수가 인기다.

우리 꽃자수나 전통 문양을 수놓아 만든 다포, 행주, 앞치마, 쿠션, 방석 등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면사를 이용해 무명, 광목, 린넨에 자수를 놓아 세탁이 가능하고 실용적이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고 했던가. 규방공예품의 완성은 매듭[每緝]이다. 매듭을 장식해야 비로소 공예품의 완성도가 올라간다. 일상생활에서도 그 쓰임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주머니, 노리개, 허리끈 등 각종 복식용으로 생활 전반에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07.베조각보 ⓒ한국자수박물관  /   08.명주조각보 ⓒ한국자수박물관  /   09.색실누비 클러치(이미석)



조선의 규방문화, 현대로 들어오다

옛 여성의 꿈과 소망이 담겨 있는 규방공예품은 현대에 되살아나고 있다. 현대의 규방공예는 여성의 취미·작품 활동과 더불어 생활속 인테리어 소품으로, 더 나아가 한국적 이미지가 담긴 문화상품으로 개발돼 우리 규방문화를 재창조해 가고 있다. 자투리천으로 만든 알록달록 조각보, 예쁘고 앙증맞은 주머니, 비단 위에 곱게 놓은 화려한 자수, 정성으로 완성한 작품에 빛을 더하는 매듭 등 이들을 보면 갖고 싶어지고, 직접 만들어 즐기거나 선물하고 싶어지곤 한다. 또한 공들여 만드는 과정에서 직접 본인의 손으로 만드는 성취감과 즐거움이 있다.

요즘 코로나19 상황으로 외출이 제한되고 집콕 생활에 따라 집에서 즐길수 있는 문화체험의 폭이 넓어지면서, 규방공예 강좌가 안방으로 들어오고 있다. 각종 인터넷이나 SNS에서는 규방공예 콘텐츠 온라인 영상이 많이 제작되고 구하기 힘든 재료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집콕 생활 시대 규방공예의 매력에 빠져 보면 어떨까. 어떻게 재창조하느냐가 중요 관심사가 된 요즈음,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의 새로운 디자인 작업이 우리의 규방문화를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10.조각보를 응용한 저고리(이미석)  /   11.조각 브로치(박은영)  /   12.조각보를 응용한 원피스(임현경)
출처/이미석(우리옷과 규방 공예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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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