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의례 관혼상제 1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어떤 시기마다 치러야 하는 대표적인 의례로 출생부터 관례, 혼례, 환갑/ 회혼례, 상장례, 제례를 일컫는 관혼상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인의 의례 관혼상제 1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어떤 시기마다 치러야 하는 대표적인 의례로 출생부터 관례, 혼례, 환갑/ 회혼례, 상장례, 제례를 일컫는 관혼상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출생에 관하여

삼칠일 동안 걸어두는 금줄 (아이가 태어났음을 알리는 금줄)

금줄은 부정을 막기 위해서 집 대문이나 길 어귀에 걸어두는, 공간을 구분하는 새끼줄이다. 일반적으로 집안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거나 집안이나 마을에서 중요한 제의를 준비할 때 집 대문이나 마을 입구 양쪽 기둥 사이에 걸어둔다. 금줄을 걸어두는 기간은 삼칠일(21일) 정도이다. 금줄은 왼새끼를 사용하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숯과 종이, 성별에 따라 남자아이는 빨간 고추를 여자아이는 솔가지를 함께 엮어 걸어둔다.

금줄은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민속으로 검줄 · 검석 · 금색 · 금구줄 · 금계줄 · 금기줄 · 건구줄 · 금새기 · 동줄 · 송침 · 새내기 · 좌삭(座索) · 문삭(門索) 등 지역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금줄의 가장 큰 의미는 ‘금지’이다. 상갓집과 같은 궂은 장소에 다녀온 사람이나 몸이 아픈 사람 등 새로운 생명에게 자칫 해가 될 수 있는 사람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시다. 요즘은 병원이나 전문기관에서 아이를 낳지만, 과거에는 집에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신생아만을 위한 위생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외부의 나쁜 균이나 불길한 것들로부터 태어난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금줄을 걸어두었다. 금줄은 일반적으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부터 삼칠일 동안 걸어둔다. 삼칠일은 출산 후에 7일이 3번 돌아오는 기간으로 총 3주, 21일을 의미한다. 숫자 7은 좋은 기운이 있는 숫자라고 여겨졌고, 숫자 3은 하늘·땅·사람을 담는 음양의 조화가 완벽한 숫자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금줄은 짚으로 엮은 새끼줄을 사용한다. 짚은 쌀, 보리, 밀 등의 곡물을 수확하고 남은 줄기와 잎으로, 토지와 청정한 식물, 다산을 의미한다. 금줄은 특별하게 왼쪽 방향으로 꼬아서 만든 왼새끼를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 활용되는 새끼줄은 오른쪽으로 꼬아서 만든다. 그러나 금줄은 금지와 신성한 공간을 구분 짓는 의미를 가지므로 특별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비일상적인 방향으로 만든 왼 새끼줄을 사용한다.


이미지는 다음


금줄에는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해 정화의 의미가 담긴 물건을 꽂아서 걸어두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남자아이의 경우는 빨간 고추를, 여자아이의 경우는 숯이나 솔가지를 꽂았다. 고추의 빨간색과 매운맛은 귀신을 쫓아내 주는 벽사의 의미가 있고, 솔가지는 뾰족한 바늘같은 생김새로 부정한 것을 찔러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솔가지는 여자의 절개를 상징하는 푸른 상록수인데다 과거에는 옷을 직접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태어난 아이가 바느질을 잘하는 재주 많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다.
이처럼 달아놓은 물건을 통해서 태어난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추와 솔가지 외에 숯과 종이를 같이 꽂기도 했다. 숯은 땅속에서도 썩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다. 따라서 나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화의 의미로 걸었다. 종이는 아이가 하얗고 순수한 마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 지폐 대신으로 아이가 부유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또한 밤에도 눈에 띄는 하얀색으로 금줄이 눈에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종이를 함께 꽂아 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과거에는 집안을 이어나갈 남자아이를 낳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중 아들이 태어난 집에 걸어둔 금줄을 가져다가 달여 먹거나 금줄을 안방에 걸어두는 방법도 있었다. 금줄에 그 집의 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금줄에 걸려있는 빨간 고추를 가져다가 달여 먹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들을 낳은 집에서 다른 집에 금줄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지역별 출생의례 풍습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는 것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크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기자의례와 출산을 기준으로 산전의례와 산후의례가 있다.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경기도의 출생의례
경기도 양주에서는 농사지어 처음 찐 쌀을 창호지에 싸서 달아두었다. 이를 삼신주머니라 부르며, 고깔을 씌우기도 했다. 인천 지역에서는 초상 중에 아이를 낳으면 팥죽을 쑤고 밥이나 떡을 해서 죽은 사람의 살을 푸는 '상문풀이'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미역국과 밥과 정한수를 떠놓고 삼신에게 먼저 올리고 산모가 먹는 풍습도 있었다. 산모가 처음 먹는 이 밥을 ‘첫국밥’이라고 하는데 수원에서는 ‘젖국밥’, 의왕에서는 ‘첫국첫밥’이라고 불렀다.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는 것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크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기자의례(아들을 기원하는 의례)와 출산을 기준으로 산전의례와 산후의례가 있다.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경기도에서 조사된 기자의례의 사례로는 절에 가서 불공 드리기, 조상신이나 삼신에게 기원하기, 아들을 낳은 집 금줄에 매달린 고추를 훔쳐다 달여 먹기, 단골무당에게서 부적 등의 비방 받기 등이 있다. 돌하르방, 석인의 코 부분을 갈아 달여 먹기도 했는데, 이는 경기도만의 특징은 아니고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출산에 관련된 신으로는 ‘삼신’이 있다. 그래서 집안에 삼신할머니가 없어서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삼신을 모시게도 했다.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는 농사를 지어 처음 찐 쌀을 창호지에 싸서 방에 매달아두었다. 이것을 삼신주머니라고 불렀고, 삼신 주머니 위에 종이로 고깔을 만들어 씌웠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원할 때는 별도로 바가지에 쌀을 담아 창호지로 덮어 안방 윗목에 1년 동안 매달아 놓는다.
아이를 가졌을 때는 산모와 가족들 모두 주의해야하는 금기들이 있다. 산모는 뼈가 박힌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 경기도 오산지역에선 임신 중에 북어를 먹은 산모의 아이가 손이 퉁퉁 부어서 나왔다. 병원에 데려가니 북어 가시 같은 것이 나왔다고 한다. 이를 ‘미’라고 부른다. 집안에서 지켜야 할 금기사항은 ‘집’과 관련되어 있다. 집을 고치거나 못을 박지 않고, 쥐구멍이 있어도 막지 않는다. 집을 고치거나 못을 박으면 아이가 언청이로 태어나고 쥐구멍을 막으면 난산으로 고생을 하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을 때도 삼신할머니께 상을 올리는데, 일반적으로 이를 삼신상이라고 부른다. 경기도 광주에서는 삼신상을 ‘산밥’이라 부르고, 하남에서는 ‘삼밥’이라고 불렀다. 해산 후 3일째 되는날, 한이레, 두이레, 세이레까지 해서 삼칠일간 총 4번의 삼신상을 차린다.

또한, 경기도에서는 부정에 대처하는 의례로 ‘상문풀이’가 있었다. 인천 지역에서 초상 중에 아이가 태어날 때 하는 의례이다. ‘상문’이란 죽은 사람으로 인한 살을 의미한다. 초상 중 아이가 태어날 때는 팥죽을 끓이고 밥 혹은 떡을 해서 축원을 한다. 이렇에 해야 죽은 사람의 살이 풀린다고 한다.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외부로부터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방지하기 위해 대문에 금줄을 친다. 금줄을 일반적으로 인줄이라고 한다. 남양주 조안리나 구리 사노동에서는 강을 건너 온 사람이 아이를 낳은 산가에 들어오면 부정하다고 여겼다. 또한, 구리 사노동에서는 금줄과 함께 대문 앞에 황토를 깔았는데 이는 부정에 대한 경계를 의미한다.

출산 후 ‘태’를 처리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가평은 북한강을 끼고 있어 태를 강물에 띄워 보내거나 태에 무거운 돌을 달아서 강으로 던진다. 구리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다. 강에 떠나보내는 날을 ‘삼 나가는 날’이라고 한다. 강을 끼고 있지 않은 지역에서는 왕겨를 태운 다음 그 재를 개울가 모레더미에 묻거나 물에 흘려보냈다. 안성에서는 태와 탯줄을 바로 태우지 않고 3일이 지나고 삼신상을 차린 후에 처리했다. 또한 태반은 태워서 냇물에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아이를 낳은 후 산모가 처음 먹는 밥을 ‘첫국밥’이라고 한다. 미역국과 밥과 정화수를 각각 한 그릇씩 준비한 뒤 먼저 삼신에게 올린 후 산모에게 먹인다. ‘첫국밥’은 지역마다 부르는 말이 달랐는데, 수원에서는 ‘젖국밥’, 의왕에서는 ‘첫국첫밥’이라고 부른다. 용인에서는 ‘삼신바가지’에 첫국밥을 담아 삼신께 올리고 난 후, 바가지 째로 산모가 먹기도 했다.


충청도의 출생의례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의례를 말한다. 아이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의례에는 자연의 생명력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를 낳은 집의 생명력을 가져오기도 한다. 충청도에선 아이 갖기를 기원해 아이 낳은 집의 도끼, 작두비녀, 배냇저고리, 고추, 절구대 등을 출산의 주구로 놓고 아들을 기원했다. 아이를 가지고 유산의 기미가 느껴지면 오이넝쿨이나 호박넝쿨을 달여 먹는다.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는 것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크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기자의례, 출산을 기준으로 산전의례와 산후의례가 있다. 출생의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삼신은 집안마다 하나의 성씨만을 보살핀다고 믿었다. 따라서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이 삼신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 삼신을 모셔오는 의례를 했다. 이를 ‘삼신받기’라고 한다. 삼신받기는 산신이나 용왕의 도움으로 받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삼신받기는 자연의 생산성이나 생명력을 가정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다. 효험을 높이기 위해 무당이나 법사, 스님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낳은 집의 생산력을 가지고 오기 위해 아이 낳기를 바라는 여성이 출산한 집에 가서 삼신상에 올라가는 첫국밥을 끓여주고 산모와 나누어 먹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아이를 낳은 산모의 속옷을 입고 아이가 태어난 진자리에 앉아서 잉태를 기원하기도 했다. 충청남도에서는 도끼, 작두비녀, 고추, 절구대, 서답, 배냇저고리 등이 출산의 주구들로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도끼의 경우에는 아들을 낳은 여성의 것이나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의 것이 효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가졌을 때는 몸가짐을 조심한다. 만약 유산의 기미가 나타나면 산모에게 호박 넝쿨이나 오이넝쿨, 우물의 두레박줄을 삶아서 먹인다. 이것은 넝쿨이 줄기를 타고 혹은 두레박줄이 올라가듯이 태아도 자궁에 올라붙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유산을 했다면 아이를 잿간에 묻어야 또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가 되면 산실을 준비한다. 산실에는 출산에 필요한 수건, 가위, 대야 등을 준비하고, 윗목에는 삼신상을 마련한다. 만약 집안에 산모가 2명일 경우에는 한사람은 집 바깥으로 내보낸다. 삼신은 한명 밖에 보살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실에는 짚을 까는 것이 일반적이나 회푸대를 까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출산을 할 때는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 비명소리가 이웃이나 동네에 들리면 아이가 더디 나온다고 생각했다. 만약 새 집을 짓고 3년 안에 출산을 하는 경우에는 부엌에서 출산을 하도록 했다. 그렇게 부엌에서 아이가 태어난 경우 아명으로 ‘부엌새’라 했다. 만약 부엌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아예 다른 집에 산신을 마련하도록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태를 자르는데 이때 태를 너무 짧게 자르면 아이가 오줌을 자주 누고, 너무 길게 자르면 더디 눈다고 하여 태어난 아이의 정강이 길이만큼 자른다.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이빨로 자르기도 했다. 태는 소중히 여겨 산모의 머리맡에 태반과 함께 짚으로 싸두었다가 3일 후에 태운다. 태우는 날을 ‘삼날’이라고 한다. 태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태워야 했다. 태를 삼실에서 가지고 나가는 것을 ‘삼 나간다’라고 하며, 태를 태우는 것을 ‘삼불 놓는다’라고 하고, 삼불을 놓은 자리를 ‘삼불 자리’라고 부른다. 이러한 태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이 훔쳐가기도 했다. 누가 태를 훔쳐가면 대어난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태가 다 탈 때까지 삼불 자리를 지킨다. 타고 남은 재는 깨끗한 곳에 묻어주거나 강물에 띄워 보낸다. 해안지역에서는 갯벌에 묻기도 했다.
아이를 낳으면 집 대문에 금줄을 거는데 이를 ‘인줄’ 또는 ‘삼줄’이라도고 불렀다. 왼새끼로 만들며 아들일 경우에는 고추와 거명을 끼우고, 딸일 경우에는 거멍과 숯을 끼운다. 거멍은 숯을 부르는 말이다. 또한 목화를 끼우는 경우도 있다. 금줄은 삼칠일 길게는 칠칠일까지 걸어두는데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잠시 서 있다가 금줄을 푼다. 이렇게하면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운을 점쳐보고 명이 짧거나 팔자가 사납다는 점괘가 나올 경우 두 어머니를 삼아주면 좋다고 하여 아이에게 어머니를 만들어준다. 이를 ‘시영어매’라고 한다. 시영어매는 사투리로 ‘수양어머니’라는 의미다. 이러한 수양어매는 일반적으로 소문난 용한 무당이나 집안에서 친한 무당이 하는 경우가 많다. 무당이 꺼려지는 경우에는 인근의 산모와 사주가 맞는 여자를 찾아서 아이의 새어머니를 삼는다. 이러한 시영어매 관계를 맺으면 아이는 생일이나 각종 명절에 반드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 시영어매가 돌아가시면 친부모처럼 상복을 입는다.


전라도의 출생의례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는 것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기자속(아들 낳기를 빌던 풍속)을 전라도에서는 지앙맞이라고 한다. 그렇게 아이를 가지면 태몽이나 산모의 상태를 통해서 성별을 예측해보기도 했다. 산모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주의하고 먹는 것부터 행동까지 주의했다. 산실을 마련하고 삼신상을 차린다. 대문에는 삼칠일간 금줄을 걸어둔다. 금줄을 걷어내고 나면 아이와 산모는 첫 나들이로 친정집에 간다.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크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기자의례와 출산을 기준으로 산전의례와 산후의례가 있다.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과거에는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는 것은 결혼을 한 여자들의 과제였다. 따라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주술적인 행위들이 기자속으로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지앙맞이’라고 불렀다. 주로 남근형 입석이나 깊은 계곡의 절을 찾아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다. 또한 아들을 많이 낳은 집의 식칼이나 밥주걱, 요강 등을 몰래 훔쳐와 사용을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남근의 상징인 돌부처의 코를 갈아 그 돌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기도 했고, 정월에 열리는 줄다리기에서 암줄과 수줄이 결합된 줄을 끊어서 물에 끓여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

아이를 가진 산모는 모든 것을 조심하는데 특히 먹는 것을 많이 조심해야 했다. 금기시 되는 음식들은 보통 그 동물의 특징과 형상으로 인한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오리는 아이의 손발이 오리발처럼 붙을 수 있어서 금기되었고, 닭고기는 아이의 피부가 닭 피부처럼 거칠어질 것을 우려해 금기했다. 가족들도 몸가짐을 조심한다. 상갓집이나 궂은 장소는 절대 가지 않으며, 집의 굴뚝이나 부뚝막은 임신 기간 동안 고치지 않는다.

아이를 낳을 시기가 다가오면 산실을 마련한다. 산모가 거처하는 산실에는 삼신상과 볏짚을 준비하고, 소독한 가위와 무명실도 마련한다. 아이를 낳으면 태를 자르고 무명실로 감는다. 태는 볏짚과 함께 태우기도 하지만 해안지역에서는 바다에 버리기도 한다. 이때 볏짚도 함께 떠내려 보낸다. 산실 윗목에 삼신상을 차리는데 일반적으로 밥과 미역국, 물 한 그릇이 올라간다. 가정에 따라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수수떡이나 팥시루떡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삼신상에 올라간 미역국과 밥은 산모가 먹는다. 삼신상은 세이레에서 길면 일곱이레까지 올린다. 만약 산모의 젖이 부족할 경우에는 마을의 공동샘에 가서 용왕님께 비손하기도 하고, 돼지의 족을 삶아 산모에게 먹이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집 대문에 금줄을 건다. 외부인의 출입과 잡귀의 출입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금줄을 왼새끼에 고추, 숯, 솔가지와 산실에 깔아두었던 지푸라기를 걸기도 하고, 봇이나 연필을 걸어두기도 한다. 금줄을 걷은 후에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첫 나들이로 아이의 외갓집인 친정집으로 간다. 친정집에 도착하면 산모의 친정어머니는 아이를 받아서 변소 앞에 가서 세 번 절을 한 후에 집안으로 들어간다. 변소를 먼저 찾는 것은 측신에게 먼저 인사를 드려야 아이가 건강하게 산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양간이나 빈 돼지막에 들어가서 구석마다 아이를 들이미는 ‘뱅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천하게 키우면 비범한 사람이 된다는 믿음에서 한 행위다. 이 외에도 이마에 숯을 칠해주거나 명태 대가리를 아이의 옷에 매달아두어 잡귀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도 한다.


강원도의 출생의례
강원도 지역의 기자의례(아들을 기원하는 의례)로는 산메기가 있다. 명절이나 봄, 가을에 좋은 날을 받아 삼신을 받는 의례인데, 주문진읍 소돌마을 아들바위와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요선정 옆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에게 소원을 빌면 아들을 점지해준다 하여 인기있는 기자의례 장소였다. 또한 영월에서는 산모가 삼태미(집안의 재를 담아 버리는 삼태기)를 깔고 앉으면 안된다는 금기도 있다.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는 것을 기원하거나 아이를 낳은 이후에 무탈하고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크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기자의례와 출산을 기준으로 산전의례와 산후의례가 있다.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강원도 지역의 기자의례로는 ‘산메기’가 있다. 산메기는 자연 마을 단위나 동족이 함께 삼짇날, 초파일, 단오, 칠석 등 명절이나 봄과 가을 중에 좋은 날을 받아 산을 모시는 의례로 삼신을 받는 과정이다. 간단하게 치성을 드리거나 비손(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비는 일)을 하는 곳도 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굿을 하기 위해 무당을 부르기도 한다. 굿을 할 때에는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여성들이 함께 참여한다.
강릉 지역 기자의례의 장소로는 주문진읍 소돌마을 아들바위가 있다. 아들 바위를 만지거나 절을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이 있다. 영월 수주면 무릉리 요선정 옆에 있는 마애여래좌상도 소원을 정성스럽게 빌면 꼭 한 가지는 들어준다고 소문이 나 있어 아들 낳기를 바라던 여자들이 많이 찾았다.

가정에 따라 산메기가 아닌 무당이나 복재를 직접 집으로 불러 삼신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 외에도 아들을 많이 낳은 여자의 치마나 속옷을 빌려 입거나 아들을 낳은 집 금줄에 걸려있던 고추를 가져다 다려 먹는 등의 주술적인 기자의례도 나타났다.

아이를 가진 여자들은 특히 몸조심을 해야했다. 몸가짐뿐만 아니라 먹는 것부터 말 한마디까지 조심해야 했다. 지역이나 가정에 따라 금기시 하는 것들에 차이가 있는데, 영월에서 산모는 절대 ‘삼태미’를 깔고 않지 않는다. 삼태미는 집안의 재를 담아 버리는 삼태기를 부르는 말이다. 산모가 삼태미를 깔고 앉으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어 삼태미에 담아 버리게 될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가위로, 남자아이의 경우에는 목낫으로 탯줄을 잘랐다. 이렇게 성별에 따라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성별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로 잘라야 아이가 건강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는 아버지가 치아로 탯줄을 끊기도 했다. 태는 일반적으로 태워서 처리했는데 해안지역에 경우 바다에 버리는 경우도 나타난다. 태어난 날 탯줄을 태우는 경우 종이나 신문에 싸서 첫국밥을 하는 아궁이에 넣는다. 태를 자르고 아이의 배꼽에 있는 태는 일주일 정도 지나면 떨어지는데 이를 배총 혹은 배꼽총이라고 한다. 이 배총은 보관하기도 한다. 영월에서는 배총을 횟대에 걸어두었다가 아이가 자라면서 아플 때 달여 먹이면 낫는다고 믿었다.

아이를 무사히 낳은 후에는 산파가 미역국과 밥을 해서 삼신에게 올린 후, 산모가 먹는다. 아이를 낳고 처음 먹는 밥이라고 하여 ‘첫국밥’이라고 부른다. 강원도에서는 삼신상이라는 용어보다는 ‘삼신밥’ 또는 삼신을 모신다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삼신밥은 출산후 3일째인 삼 나가는 날과 7일째인 이렛날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미역국과 밥, 간장 종지가 올라간다. 삼신밥을 차린 후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기원한 후, 산모가 먹는다. 또한 집 대문에는 왼새끼에 고추, 숯, 실, 솔가지 등을 꽂아서 금줄을 걸어둔다.


경상도의 출생의례
경상도에서는 집안에 삼신이 없으면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따로 날을 받아 삼신을 모시는 ‘삼신받기’를 했다. 삼신받기를 할 때는 가임기 여성을 데려가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던 아이가 생기면 산모는 물론 온 가족이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했다. 특히 임신 기간에는 집수리를 함부로 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을때는 산실을 마련하고 산실에는 삼신판을 차린다. 대문에는 금줄을 건다.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크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기자의례와 출산을 기준으로 산전의례와 산후의례가 있다.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아이를 낳는 것은 어느 가정에서나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어느 지역에서나 삼신에 대한 치성이 나타난다. 치성을 드리는 날에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제물을 준비한다. 무당이 함께 가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집안에 삼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삼신을 모시기 위해 깊은 산속에 있는 샘에 가기도 한다. 이때 시어머니와 같이 가는데 만약 시어머니가 가임여성일 경우에는 함께 가지 않는다. 동일한 이유로 동서지간에도 함께 가지 않는다.

삼신 받는 날이 정해지면 문상도 가지 않고, 부고조차 집안에 들이지 않았고, 삼신 받는 당일에는 금줄을 치기도 했다. 경상도에서는 삼신의 신체가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다. 삼신의 신체가 있는 곳은 문경, 예천, 상주다. 문경에서는 안방의 시렁이나 장롱 위에 바구니 혹은 단지의 형태로 삼신을 모신다. 예천에서는 바구니, 그릇, 단지 안에 쌀이나 돈을 넣어 산모가 생활하는 방 동쪽에 삼신을 모신다. 상주에서는 점쟁이를 통해 삼신의 신체를 모신다.

염원하던대로 아이를 가지면 산모와 가족들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조심한다. 산모가 먹는 음식부터 많은 것들을 조심하는데, 특히 산모의 임신 기간 동안 절대 집을 고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부엌에 손을 대면 째보(언청이)를 낳는다는 말이 있고, 문풍지를 바르면 아이가 말을 못하게 되거나 아이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산달에는 아무리 추워도 고래를 함부로 파내지 않았는데, 고래를 후비면 아이의 목젖을 후벼놓은 것 같아서 목젖이 없는 아이를 낳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통증이 시작되면 산모가 사용하던 방을 산실로 준비한다. 바닥에는 원래 짚을 깔았으나 나중에는 기름 먹인 종이를 사용했다. 기름 먹인 종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피나 오물이 바닥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해주기 때문이다. 산모가 산실에 들어가면 삼신에게 순산을 기원하는 삼신판을 차리는데 이때는 출산 전이기 때문에 생미역과 생쌀을 올린다. 아이를 낳는데 너무 오래 걸리면 솥에 양밥을 짓거나 마을에 아이를 비교적 쉽게 낳은 부인이 임산부의 배를 쓰다듬어주면 효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태를 자르는데 이를 ‘삼 가른다’라고 한다. 삼 가르기는 산모가 직접 하거나 산파가 해준다. 보편적으로 가위를 사용하나 아이의 수명이 길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낫을 사용하기도 한다. 태는 아이의 출산이 끝나면 출산으로 생긴 궂은 것들과 함께 마당에서 태운다. 태를 완전히 태우지 않으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렇게 태운 재를 물가에 흘려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가 거꾸로 태어난 경우에는 ‘거꾸리’ 혹은 ‘꺼굴래비’라고 아명을 지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또한 온 몸에 태를 감고 나온 아이는 살면서 개고기를 먹으면 좋지 않다고 여겼다.

첫 국밥은 미역국이 일반적이다. 삼신판에 올린 생미역과 생쌀로 밥을 짓기 때문이다. 삼신판은 아들일 경우에는 칠칠일까지 하지만 일반적으로 삼칠일까지 차린다. 미역국에 들어가는 재료는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해안가에서는 멸치, 명태, 가자미 등을 사용하고, 울릉도에서는 소가 없어 닭고기를 넣고 끓였다. 영덕에서는 김국을 먹고, 청송에서는 호박을 끓여먹는다.
금줄은 아이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왼새끼를 꼬아서 만든다. 아들이면 고추, 숯, 솔가지, 미역을 새끼줄에 끼우며, 딸이면 고추는 끼우지 않는다. 영주와 봉화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중앙에 큰 돌을 달기도 한다. 금줄을 일반적으로 삼칠일 정도 걸어두고 걷은 후에는 깔끔하게 말아서 삽짝 한쪽에 잘 걸어둔다. 저절로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


제주도의 출생의례
제주도의 한라산 영실, 가파도 개미왕들, 산방산, 식산봉 등은 자식을 낳기 위해 치성드리는 명소다. 제주도에선 산파를 삼승할망으로 불렀다. 아이를 낳고 3일 째 되는 날, 태를 처리하고, 쑥 삶은 물에 목욕을 했다. 목욕한 아이를 남자의 갈옷으로 싼 후 봇뒤창옷을 입혔다. 아이가 처음 입는 옷인 봇뒤창옷은 길운을 가진 옷으로 여겨 함부로 하지 않았다.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는 것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크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기자의례와 출산을 기준으로 산전의례와 산후의례가 있다.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제주도에는 자식을 얻기 위해 치성을 드리는 유명한 장소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한라산의 영실, 아흔아홉골, 성산읍 오조리의 식산봉, 가파도의 개미왕들, 대정의 산방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제주도 동북 지역에는 미럭당이라는 미륵을 상징하는 신체를 모신 당이 있는데, 이곳도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치성을 드리는 치성기자는 절에서 하는 불공, 명산대천 치성, 집안에서 올리는 치성, 심방을 불러서 치러지는 불도맞이 굿 등이 있다. 불도는 아이의 잉태부터 출산까지 관장하는 산신으로, 불도맞이를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육지에선 아이를 낳기까지 산모가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도 부지런히 일했다.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를 출산하거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길에서 낳은 아이에게는 ‘길둥이’ 혹은 ‘질둥이’, 축항에서 출산했을 경우 ‘축항둥이’, 배에서 태어난 경우에는 ‘배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반적으로는 분만일이 다가오면 출산을 도와줄 산파를 구한다. 제주도에선 산파를 삼승할망이라고 부른다.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 미리 준비해두었던 보리짚을 바닥에 깔고 바구니나 멱서리(짚으로 날을 촘촘히 결어서 만든 그릇의 하나. 주로 곡식을 담는 데 쓰인다)에 옷을 가득 감아서 바게를 얹힌다. 바구니는 꽉 붙잡고 힘을 내기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보리짚은 곡식의 생산성을 상징하는데, 나중에는 편리성을 위해 비닐로 바뀌었다. 보리짚을 깔았을 경우, 사흘이 지난 후에 걷어치운다.

출산 후에는 아이의 안전을 위한 태 처리와 산모의 음식, 아이 옷 입히기 등의 의례가 이루어졌다. 태를 처리하는 것은 아이를 낳고 3일째 되는 날에 이루어졌다.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첫 번째 방법은 뚜껑이 있는 그릇에 넣어 뚜껑을 닦아 남몰래 바다에 가서 던지는 것이다. 만약 뚜껑에 틈이 생겨서 개미에게 태를 물어 뜯기게 되면 아이가 부스럼이 난다고 믿었다. 두 번째 방법은 삼살방이 아닌 방향으로 나가 세 갈랫길 한가운데서 태를 장작으로 태우는 것이다. 태우고 남은 재는 태독약으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 방법은 땅에 묻는 것이다. 이때에도 뚜껑이 있는 그릇에 담아 묻어야 한다. 태를 묻고 3년 후에는 간질병이나 폐병환자에게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태 처리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졌는데, 집에서 너무 멀리서 할 경우, 자녀들의 나이터울이 많아진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출산 직후, 꿀물이나 메밀가루를 탄 물이나 죽순을 먹었다. 아이와 산모는 출산 3일째 되는 날 목욕을 하는데, 쑥 삶은 물을 사용한다. 출산을 앞두고 미리 쑥을 깨끗하게 말려두었다. 목욕하는 날, 산실에 깔아두었던 보리짚도 치운다.

목욕을 한 후에는 수유를 시작하고, 아이에게 옷을 입힌다. 옷을 입히기 전에 아이를 남성의 ‘갈중의’로 싸는 것이 관행이었다. 갈옷은 무명 한복에 감물을 들인 것으로, 빳빳하고 몸에 잘 붙지 않으며 질기고 세탁하기 편하다. 이런 갈중의 중에서도 남자옷으로 아이를 감싸야 건강하게 자란다는 믿음이 있었다.

목욕을 한 후에는 ‘봇뒤창옷’을 입힌다. 봇뒤창옷은 아이가 입는 첫 옷으로 저고리의 등을 반쯤 꿰매고 아래쪽은 터놓은 형태이다. 아이의 성별에 따라 소매 길이가 다른데, 남자는 긴소매, 여자는 반소매다. 옷고름은 실로 만드는데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제주도에서는 봇뒤창옷을 입어야만 하나의 인격으로 여겼기 때문에 아무리 가난해도 빌려서라도 꼭 입혔다. 빌려준 경우에도 반드시 찾아왔다고 한다. 봇뒤창옷은 물려서 입기도 했다. 이렇게 보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낡았을 경우에는 깨끗한 곳에서 태워버렸다. 과거시험을 보러가거나 소송 등의 문제가 있을 때 봇뒤창옷을 가져가면 행운이 따른다고 믿었다. 이렇게 봇뒤창옷은 길운을 상징하는 옷이었다.


아이의 첫 생일, 돌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돌’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태어나 1년이 되기 전에 죽는 아이들이 많아서 돌의 통과의례적인 의미가 컸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에 예쁜 돌복을 입히고, 음식을 풍성히 차려 잔치를 했다. 잔치 중에는 아이의 장래를 예측해보는 돌잡이도 했고, 이웃들에게 돌떡을 돌리기도 했다. 현재에도 돌은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돌잔치 문화도 전승되고 있다.


김홍도 첫 돌 잔치


돌은 아이가 태어난 첫 생일을 의미한다. 첫 생일 의례라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과거에는 의료 시설이 부족하여 태어나서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무사히 건강하게 한 살이 되는 것은 하나의 고비를 넘는 통과의례적인 의미가 더 컸다. 그런 의미에서 첫 생일은 특별했으므로 잔치를 열었다.

돌날 아침이 되면 삼신상을 차려 아이가 무사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삼신께서 보살펴주기를 기원한다. 삼신상에 올라갔던 미역과 쌀로 미역국과 쌀밥을 해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생일을 처음으로 맞이한 아이에게 매일 입던 하얀 옷이 아닌 색색의 예쁜 옷을 입힌다.

첫 생일을 맞이한 아이는 특별한 옷을 입는데 이를 ‘돌복’이라고 한다. 옷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여자아이는 분홍색 풍차 바지를 속바지로 입고 다홍색 치마와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풍차 바지는 뒤쪽이 뚫려있어 기저귀 갈기 편하게 되어 있다. 저고리 위에는 궁중에서 여성들이 입었던 당의나 색동두루마기를 입는다. 머리에는 금박 장식이 있는 다홍색 댕기를 드리고 굴레나 조바위를 쓴다. 남자아이는 회색 혹은 보라색 풍차 바지에 분홍저고리나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저고리 위에 남색 조끼, 색동마고자를 입고, 오방장두루마기를 입는다. 두루마기 위에는 장군들이 입던 전복이나 네 폭으로 갈라지는 사규삼을 입었다. 그리고 남녀 구분 없이 타래버선을 신고 허리에는 돌 띠를 둘렀다. 돌 띠에는 쌀, 콩, 팥, 수수, 좁쌀을 넣은 작은 주머니가 여러 개 달려있고, 띠에는 모란을 수놓기도 한다. 한쪽에 만수무강 혹은 수복강녕 같은 길상무늬를 수놓아 늘여주기도 했다. 돌복에는 오방색을 사용하는데, 이는 음양오행 때문이다. 흑색, 백색, 황색, 적색, 청색을 모두 갖춘 오방색은 오행을 모두 갖추어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가족들은 대청마루 혹은 안방에 돌잔치를 위한 돌상을 풍성하게 차린다. 돌상에는 수수 팥떡과 백설기, 국수가 반드시 올라간다. 국수 가락은 긴 국수처럼 수명이 길게 오래 살라는 의미, 흰 쌀로만 찐 새하얀 백설기는 아이의 티 없이 맑은 신성함과 순진무구함, 수수 경단에 팥고물을 듬뿍 묻힌 수수 팥떡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잡귀를 쫓아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수수 팥떡은 돌뿐만 아니라 10~12살이 될 때까지 생일상에 올리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장래를 예측해보기 위해서 물건을 질서 없이 올려놓고 고르게 하는 돌잡이도 진행된다. 돌에는 이웃집에 떡을 돌렸다. 돌떡을 받은 집은 떡을 가지고 왔던 그릇에 돈이나 쌀 혹은 실타래 등을 담아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답례를 한다.


돌잡이 용품



돌잔치는 지금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민속 중의 하나이다. 현재도 태어난 아이의 첫 생일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집이 아니라 전문적인 식당 같은 데서 치른다. 돌잡이 물품도 과거와 달리 청진기, 마이크 등 현재 각광받는 직업과 관련된 물품이 올라가는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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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