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세월을 품고 돌아온 데니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데니 태극기’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다

100년의 세월을 품고 돌아온 데니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데니 태극기’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다. 1886년에 조선의 외교 고문으로 초청받아 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가 1891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간직해 온 것으로, 1981년 후손이 한국에 기증하였다.

01.데니 태극기(앞면) ©국립중앙박물관


열강의 각축과 국기의 제정

우리나라에서 국기가 제정된 것은 1882년의 일이다. 국기는 기존의 동아시아 체제에서 벗어나, 많은 다른 나라들과 수교를 맺는 과정에서 제정되었다. 1876년 일본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후 국기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논의해 오다가 1882년 5월 미국과 수교를 맺을 때에 서로 국기를 교환하여 1882년에 미국 해군성에서 발행한 『해양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이라는 책에 우리나라의 국기가 수록되었다.

그해 9월에 박영효가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던 중 배 안에서 국기 도식을 그리고 고베의 숙소에 도착해서 국기를 게양했다는 기록도 있다. 해방 후 국학자 류자후는 「국기고증변」(경향신문 1948.2.28.)에서 “김옥균이 초안을 만들어 어윤중, 김홍집, 박영효와 상의하고 고종의 재가(裁可)를 받은 것으로 김옥균이 창안하고 고종이 제정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교 관계의 필요성에서 제정한 태극기는 수교를 기념하여 1883년에 미국으로 간 사절단이 워싱턴의 호텔에 게양했으며 1888년에 마련한 주미공사관에도 게양해 ‘KOREA’의 상징물로 역할을 했다. 이처럼 한미 외교 관계에 태극기는 여러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데니 태극기도 그중의 중요한 장면을 차지한다.


조선의 외교 고문 데니

1877년에 중국 텐진 주재 영사로 일했던 데니는 1884년 4월 9일 조선 조정으로부터 내아문 협판 겸 외아문 당상으로 임명받았다. 같은 해 6월에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조약 체결 업무를 맡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특히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는 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했다.

1888년 청의 조선에 대한 ‘속방론(屬邦論)’을 비판한『China and Korea(청한론(淸韓論)으로 번역됨)』를 썼는데, 이 때문에 청의 리훙장에게 밉보이게 되어 1888년 말부터는 정상적인 업무를 하지 못하다가 1891년 1월 조선을 떠났다. 데니가 조선에 머물면서 조선의 외교를 위해 쓴 많은 편지들은 뒤에 『데니 문서』로 번역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큰 태극기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크다. 90.5cm와 92cm 광목 두 폭을 이어 박아 만든 바탕 위에 양방의 홍색과 음방의 청색, 그리고 4괘는 색천을 형태에 맞게 오려 덧대어 박음질 했다. 가운데 태극의 지름은 115.8cm(가로)나 되는데 음양이 서로 깊숙이 교차하는 점이나, 괘의 색깔이 청색이라는 점이 현재의 태극기와 다르다.

데니 태극기 이 전에는 이처럼 큰 태극기가 발견된 적이 없었다. 1890년~1900년대 초 태극기의 규격은 일정하지 않았는데, 1902년에 일본 임시대리공사가 국기의 규격을 문의하자 외부(外部)에서는 기의 길이가 5척 3촌, 너비 3척 6촌이라고 제시한 기록이 있다. 5척 3촌은 160cm 정도이니 데니 태극기는 그보다 훨씬 크다. 데니 태극기와 유사한 크기의 태극기는 워싱턴에 개설했던 주미 공사관에 설치되었던 사진에 남아 있다. 이러한 크기로 볼 때 일반에서 사용하기보다는 관청 건물에 게양하는 용도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데니가 조선을 떠날 때 고종이 하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02.워싱턴 주미공사관 복도에 걸린 태극기 1893년 ©헌팅턴 라이브러리
03.1884년 통리교섭 통상사무아문에서 영국에 보낸 태극기 도식 ©영국 국립문서보관소
04.조선의 외교에 힘쓴 데니의 모습 ©R.R.스워다우트,『데니의 생애와 활동』(평민사, 1988)


워싱턴 주미 공사관에 걸린 태극기

주미공사관은 우리나라가 구미에 처음으로 마련한 외교 공관이다. 공사관 정면의 포치에 태극기를 새기고 옥상에도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1층 중앙홀의 벽면에 대형 태극기를 게시한 사진이 남아 있다. 〈Demorest’s Family Magazine〉이라는 월간 매체에서 1893년 7월에 당시 주미 공사관의 모습을 소개할 때 게재하기도 했다.

데니 태극기를 세로로 걸면 주미 공사관 복도에 걸린 태극기와 괘의 배치가 일치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건, 감, 곤, 리 순으로 되어 있는데 다만 태극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영국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태극기 도식은 1884년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깃대가 오른쪽에 있고 괘의 배치는 같으나 태극의 방향이 데니 태극기와 다르다. 이 시기 여러 태극기를 비교해 보면 태극의 방향이나 괘의 배치가 하나의 규칙으로 정리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90년 만의 귀환


데니 태극기가 우리나라에 돌아온 것은 1981년 6월 23일이다. 이 태극기는 한미관계사를 연구하던 스워다우트(Robert R. Swartout) 박사가 오리건 주 대학 도서관에 기증된 데니 문서를 살펴보다가 데니의 후손을 수소문한 끝에, 윌리엄 랠스턴(William C. Ralston, 1899~1991)과 연락이 닿아 그가 간직하고 있던 데니의 유품 중에서 발견했다.

데니 누이의 손자인 랠스턴은 사연을 듣고 아들 부부를 한국에 보내 태극기를 기증하도록 했다. 데니 가족의 문서와 편지, 사진 등은 현재 포틀랜드의 루이스 앤 클라크 대학에 ‘랠스턴 가족 컬렉션’으로 소장되어 있다. 데니 태극기를 찾아낸 스워다우트 박사는 『데니의 생애와 활동』이라는 책을 써냈고 이는 한국어로 번역되어있다.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 제382호로 지정되다

데니 태극기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언론에서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의 귀환 소식을 대서 특필했다. 물론 그 뒤에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소장한 쥬이 태극기가 그보다 이른 1884년 이전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데니 태극기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아니게 되었다. 데니 태극기는 1987년 독립기념관 개관에 맞추어 일반에 공개되었고, 1990년 광복 45주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되었다.

2008년에 문화재 등록을 위한 태극기 조사가 진행되었고,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태극기,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독립기념관 소장 태극기 목판 등 16점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데니 태극기는 국가등록문화재 제382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데니 태극기는 1880년대 한미 관계의 산물로, 100년 역사를 품고 우리 품에 돌아와있다. 출처: 문화재청 목수현(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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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