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나누는 것에 있다

원조도안 스님 법문


법향 가득한 마음,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나누는 것에 있다.


배움을 위하거든 하루하루 지식을 더해 갈 것이지만 道를 위하거든 하루하루 덜어내야 한다.
덜고 덜어서 무위에 이른다. 무위에 이르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다. 일반적인 공부, 철학적인 사상은 체계적 구축에 있지만 불교의 禪 사상의 구축은 해체하는 공부에 있다.



모든 부처님과 조사 스님은 문자와 언어를 세우지 않고 다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했을 뿐 다른 법이 따로 없다. (以心傳心)
만일 이 마음 밖에 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망구니의 말이요, 부처님의 말은 아니다.
궁극적인 진리는 이름과 형상을 떠난 것이며 본래 생사조차 없음을 강조한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만물과 하나 된 경지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언어를 아는 사람이다.
거듭거듭 들어서 아는 지식이라 해서, 전통이 꼭 그렇다 해서, 소문에 그렇다 해서, 종교 성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또는 이상이나 추측에 근거한 지식 때문에, 또는 어떤 사람의 신뢰성 때문에, 또는 이 사문은 우리들의
스승 이시다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진리라고 따르지 말라.
-중아함경-



붓다의 가르침은 실존적 현실주의 을 강조하는 입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회향 이란!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의 복락을 위해서 공덕과 이익을 주자고 하는 사상이다. 진정한 포괄주의 금강경에서 붓다는 여래가 설한 법까지도 절대 진리로 집착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여래가 스스로 나는 설할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지 말라. 만약 여래가 설할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설법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진리를 설한다 해도 설할 진리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할 때 비로소 진리를 설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이 궁극적 실재의 영원(非說小說分) 불변성을 내세우는 배타적 포괄주의 와 불교의 다원주의를 향해 열려 있는 포괄 주의다.
-김응표 교수의 불교와 종교철학-

무엇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픈가?
사람 아니면 물질이다.
우리가 사바세계에 나온 것은 행복하려고 태어난 것이다.
빈손 빈 몸으로 태어났는데 근심 걱정은 왜 하는가?
공연한 탐욕과 망상으로 근심 걱정하고 살아가는가?

진실대로 자기 정성대로 노력하기만 하면 세상으로 될 만큼 되어 있다.
근심스럽고 걱정되는 일이 있더라도 다 털어 버리고 언제나 쾌활하고,
낙관적인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활기찬 생활을 해야 한다.
여태껏 생활해온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 관념에 잘못이 있으면 텅 비워 버리고 바르고 참된 활발한 정신으로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멋지게 살아가야 한다.
-경봉 노스님 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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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