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독창적 콘텐츠, 진안 가위박물관

마이산 북부에 위치한 가위박물관은 '가위'라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소재로 한 세계 유일의 희귀 박물관이다

독창적 콘텐츠의 진안 가위박물관



"가새가새 보러 가세 진안 가위 보러 가세
용담 백성 소박하고 마이산은 신비한데
고려 가위 잠을 깨어 귀한 자태 드러냈네
우리 인생 시작할 적 처음 만난 문명일세
사는 동안 곁에 두고 친구처럼 지내더니
우리 삶에 마지막에 함께 하는 동지일세"
-중략

*가새 라는 말은 경기, 경상, 전라, 충청지방의  방언이다.

진안 가위박물관 정문 앞에 새겨진 문구다. 보석박물관, 민예박물관, 술박물관, 수석박물관, 조개박물관 등 다종 다양한 박물관을 방문했지만 가위박물관은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아이템이다. '가위' 하면 흔히 가정에서 사용하는 주방용 가위나 바느질 가위,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컷트용 가위, 좀 더 나아가 수술 가위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가위박물관이라니? 호기심과 궁금증이 일어났다. 박물관에 들어서는 순간 호기심은 놀라움으로 변한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종류와 모양의 가위가 있었다니, 다양한 기능은 물론 아름답기까지 한 희귀한 가위들이 연신 감탄을 자아낸다.

세계 유일, 독창적 콘텐츠
마이산 북부에 위치한 가위박물관은 '가위'라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소재로 한 세계 유일의 희귀 박물관이다. 진안용담댐이 완공되기 이전 수몰 예정지역인 용담면 수천리에서 고려시대 철제 가위 5점이 출토된 것을 계기로, 진안의 상징인 마이산의 형상과 가위를 벌린 형상이 유사한 형태인 것, 두 봉우리의 이름이 부부봉인 것처럼 가위도 두 짝이 있어야 제 기능을 하는 점 등을 스토리텔링 해서 2016년 12월에 개관했다.

가위박물관은 영국 조지 4세가 소유했던 금 상감 캘리그라피 가위, 한나 드 로스 차일드의 왕관가위, 19세기 유럽의 귀족들이 포도송이에서 포도알을 손으로 떼어 먹지 않기 위해 사용했다는 포도 가위, 빅토리안 앤틱 가위, 한국의 엿가위 등 국내는 물론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세계의 가위 1561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1층 전시실에는 가위와 역사, 과학, 인물, 전쟁, 문화, 예술등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가위와 연관된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고, 2층 전시실에는 의료용, 보석세공 등의 특수가위와 이·미용, 부엌, 공구, 재단, 문구 가위 등 일상생활 가위를 비롯하여 다양한 가위 관련 액세서리가 전시되어 있다.



마이산 북부에 위치한 가위박물관은 가위라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소재로 한 세계 유일의 희귀 박물관이다. 수몰예정지역인 용담면 수천리에서 고려시대철제 가위 5점이 출토된 것을 계기로, 진안의 상징인 마이산의 형상과 가위를 벌린 형상이 유사한 형태인 것, 두 봉우리의 이름이 부부봉인 것처럼 가위도 두 짝이 있어야 제 기능을 하는 점 등을 스토리텔링 해서 2016년 12월에 개관했다.

가위에 얽힌 재미있고 다양한 스토리
'가위와 역사' 코너에는 현재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가위 형태인 양털 가위를 비롯해, 중세시대의 X자형 가위, 신라시대 창건된 분황사석탑에서 출토된 사리함에서 나온 한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가위인 협가위, 철컥철컥 가위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한국만의 독특한 가위인 엿가위 등 가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가위의 역사가 펼쳐져 있다.

가위 자체가 한 마리의 황새 모양을 하고 있는 황새 가위, 경전을 필사하기 위한 종이를 오릴 때마다 사용하는 도구로 성스러운 의미와 가치를 가진 이슬람 캘리그라피 가위, 1.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야전병원에서 사용하던 수술용 가위, 아르누보 양식 가위 등 가위를 통해 역사와 인물은 물론 전쟁, 문화, 예술까지 다양하게 엿볼 수 있다.
여러 종류의 가위를 보면서 가위의 다양한 기능과 쓰임세는 물론 아름다움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지럼 가위박물관은 단순하게 가위만을 쭉 늘어놓은 전시장이 아니라 가위를 매개로 과거 시대의 생활상과 예술 사조, 문화까지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양한 체험활동, 볼거리, 즐길 거리 풍부
마이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가위박물관은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많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황새가위꽂이 만들기, 황새 가위 석고 방향제 만들기 등 가위를 손에 잡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체험 활동들이다. 가위박물관이 위치한 마이산 북부에는 진안의 자연, 역사, 문화를 알려주는 진안 역사박물관, 전통 공예 명인들이 공예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 전시하는 마이산 명인명품관, 딱종이 박물관, 부채 박물관 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일상적으로 가위는 '자른다'라는 어감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탯줄을 자르는 행위나 중요한 행사에서 커팅식을 하는 것은 모두 '시작'의 의미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자르는 도구인 가위는 끝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김희진 학예사의 설명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진안 가위박물관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난, 말 그대로 행복한 전시'였다.


한국가위의 역사


삼국시대


한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가위는 신라시대 643년 (선덕여왕 3년)창건된 분황사석탑에서 출토된 사리함에서 나온 협가위이다. 형태의 쇠가위로 손잡이가 없고 밑부분을 가늘게 만들어 둥글러 날을 엇갈릴 수 있도록 했다. 사용방법은 양날부분에 옷감이나 실을 넣고 가위등을 눌러 잘랐을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경주 월지에서 발견된 금동초심지가위는 일반적인 가위가 아니라 초를 끄기 위해 심지를 자르는 용도로 쓰였던 가위로 문양과 테두리의 장식이 매우 뛰어난 아름다운 X자형 가위이다. 이 가위와 모양이 매우 유사한 초심지가위가 일본 왕실의 보물 수장고인 도다이사 쇼소인에서 발견되어 당시 신라인의 뛰어난 가위 세공기술과 함께 가위가 전파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 가위 유물은 신라의 것과 같은 형과 현재의 X형과 같은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X형 가위는 고려형 손잡이가 달린 2개의 날을 서로 마주보게 엇갈려서 교차점에 나사를 끼워 만들었다. 날을 뾰족하고 긴 세모꼴 이거나 끝이 둥근모양이고 날과 등의 중앙에 능선이 있는 것도 있다. 고려가위는 고리형 손잡이 크기는 다양하고 전체 길이는 대개 19~24cm다. 재료는 무쇠가 대부분이고 철과 백동을 사용한 것도 있다. 진안 수천리 출토 가위는 고려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가위로 손꼽히고 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 가위는 고려의 것과 비슷한 ×형의 것이 대부분이며, 손잡이 모양이 고려 것보다 좌우로 넓어진 것이 특징이고 모양도 다양하다. 사용된 재료는 무쇠가 대부분이고 철과 백동을 사용한 것도 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손잡이의 좌우가 다른 것이 나왔는데, 이것은 왼쪽 손잡이에는 엄지손가락을 넣고 오른쪽 손잡이에는 나머지 네 손가락을 넣게 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가위가 나오고 있는데, 그 사용하는 원리에는 다를 것이 없다.


한국의 가위

한국인의 특색 가위, 엿가위


엿장수 의 상징인 엿가위는 가윗날이 넙적하고 움직일 때마다 철컥철컥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엿을 자를 때는 가윗날을 사용하지 않고 엿 정을 가위로 두드려 자르기 때문에 망치와 가까운 독특한 기능을 가졌다.



고려의 멋을 품은 수천리 가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 고분군 석곽묘 45호에서 출토된 가위이다. 이 가위는 가윗날 교차점에 끼운 나사는 꽃잎 모양이며, 뭉특한 가윗날의 중앙에는 능선을 둔 상당한 수준의 디자인이 가미된 가위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다. 무덤의 주인은 높은 신분으로 추정되며, 가위의 길이는 23cm정도로 손잡이 크기를 달리하여 왼쪽에는 엄지를 끼고 왼편에 나머지를끼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가위의 역사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가위

동양 가위 유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00년경 중국 전한 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8자형 가위이며, 그 다음은 기원후 500년경 중국 남북조 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V자형 가위이다. 그 후 후한 시대부터 송나라 때까지 8자형 철제 가위가 무덤의 부장품으로 자주 출토되였고, 시대에 따른 형태의 변화와 유사한 X자형 가위 형태를 갖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8자형 가위는 그 형태가 서양 가위 유물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현대까지 발견된 서양 가위의 출토시기가 동양가위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가위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서양가위의 역사



가위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서양가위는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에서 만들어졌으며 3천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가위 유물이 초기 가위로 알려져 있다. 초장기 가위는 소재는 청동이고 형태는 U 자형과 8 자형 그리고 손잡이 부분에 C 자 모양의 용수철로 연결된 스프링 가위 (spring scissors)가 대부분이다. 현재의 가위와 유사한 형태인 두 개의 날을 가진 가위는 기원 후 100년경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 재료는 철제가 대부분이고 주로 재단과 미용 그리고 의료용등 제한된 용도로 사용되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중세시대 이후의 서양가위
유럽에서는 중세 말까지 스프링 가위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다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양날의 움직임이 좀 더 효율적으로 진화한 X자형 가위가 대세가 되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지나 현대적 가위로 형태를 완성하였다. 1761년 영국인 로버트 힌치리프 (Robert Hinchliffe)가 가위의 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주철을 사용한 새로운 제조 방식을 개발한 후 칼처럼 예리한 절삭력을 가지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스테인레스 재질로 된 가위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가위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또한 다양한 용도에 따른 소재 개발로 전문분야에서 가위의 활용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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