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인 이재명과 매국노 이완용

이완용을 저격하다

대한의인 이재명과 매국노 이완용

이완용을 저격하다

이재명 의사는 친일파 이완용에게 칼침을 놓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벨기에 국왕의 장례식에 가던 이완용을 습격하여 린치를 가했는데 죽이는데는 실패한다.


 대한의인 이재명과 매국노 이완용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이완용에 대한 응징의 수단으로 칼을 사용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김구 선생님이 연관' 되어 있으며 그로 인하여 이재명 의사의 의거는 성공하지 못했다.

1. 이재명 의사에 대하여

이재명 의사는 1890년에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출생했다고 한다.1962년 3월 1일에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으며,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초년기의 이재명,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1904년 이미 하와이를 거쳐 미국에까지 이민을 갔으나,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 1907년에 귀국한다.
(그러나 이민 생활 적응문제 때문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해 귀국을 했다는 설도 있다)


2.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여 한 이재명 의사

사실 이재명 의사의 저격 목표는 이토 히로부미였다. 1909년 1월에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과 이른바 서북순행이란 이름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을 때, 이토에 대한 암살을 하려 했다고 한다.


서북순행중,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려 한 이재명

그런데 이 암살 계획은 순종이 이토 히로부미 옆에 서있는 등, 예기치 못한 사상자가 나올까 하여, 도산 안창호 선생이 적극적으로 이재명을 설득하여 말렸다고 한다.


자칫 무고한 사람의 피해를 우려해, 이재명의 의거를 막는 안창호 선생


그럼에도 그 해(1909년) '이토 히로부미' 는 하얼빈에서 안중근에 의해 죽는다. 어차피 그 해 죽을 운명이었던 것 같다.


3. 부부싸움 가운데 총의 격발사고가 난 이재명

이재명 의사는 이토 암살을 시도하지도 못하자, 이제는 이완용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문제는 아내의 강력한 반대였다.(그러나 아내도 이재명 의사의 죽음 뒤, 열성적인 독립운동가가 된다)

이재명 의사와 아내 오인성 여사


이재명(당시 이재명이 22세였으니, 아내도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이 자신의 부인에게 이완용을 죽이겠다 하자, 그의 아내는 만류하였고 이재명은 ‘이 계집이 나라가 중한 것을 모른다’ 고 면박을 주다가 총 격발사고가 난 것이다.

■ 이재명 의사의 부인, 오인성 여사에 대하여


젊은 시절의 이재명 의사

이재명 의사의 부인은 오인성 여사였는데, 1890년생으로 추정이된다. 부모는 평양에서 정미업을 했고 다섯자매를 두었는데 그중 맏딸이었다고 한다.
평양 성모여학교 졸업 후 황해도의 재령 진초학교 교사가 되었고, 이재명 의사 의거 당시 양심여학교(동덕여자의숙과 통합) 학생이었다.
결혼은 1908년 성모여학교를 다닐 때 이 학교 교사가 이재명 의사를 소개해 이뤄졌다고 한다.
이 의사 순국 후에, 성재 이동휘 선생의 두 자매와 함께 성진 보신여학교, 간도 양정여학교 교사를 지냈다.
연해주 간도 상하이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으며 3·1운동 소식을 듣고 동참하려 환국했으나 급서하고 말았다고 한다.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있다)


일진회 수장 이용구와 송병준은, 김정익과 이동수가 죽이기로 한다.



아무튼, 원래 이재명이 죽이기를 원했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저격으로 죽게되자, 이제 이재명은 이토 히로부미 대신 친일거두 이완용을 죽이고, 일진회의 두수장인 이용구는 친구인 김정익이 처단하고, 송병준은 이동수라는 인물이 제거하기로 계획한다.

4. 김구가 이재명의 총을 빼앗는다.
그런데 이즈음, 앞서 얘기한 이재명의 부부싸움 중 발생한 총격 사건을, 김구가 듣게된다.



이재명 의사의 총을 뺏는 김구 선생님
이재명이 자신의 총이 이완용을 죽이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김구 그리고 노백린(후에 독립군이 되는, 일본 육사 출신의 엘리트 군인)은 이재명이 약간 맛이간 젊은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재명 의사의 총을 강제로 빼앗았는데, 나중에 진짜로 이재명이 칼을 이용해 이완용에게 린치를 했지만, 이완용이 살았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이재명의 총을 뺏은 것을 무척이나 후회한다.
(그런데 이재명은 실제, 무고한 인력거꾼을 죽이게 되니...김구의 판단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 이 사건은 김구의 백범일지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다.
김구는 황해도 재령군에 있었을 때, 이재명이란 자가 총을 쏘며 난리를 피우면서 아내를 죽이려 했다는 소문을 듣게된다. 당시 백범은 이재명과 아내 사이의 부부싸움 통에 총까지 쏜 미친놈이라고 이재명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구는 안전사고를 막기위해 이재명의 총을 빼앗다고 한다.(그런데 이 부분이 확실하지 않는 게 이재명의 총을 김구가 뺏은 건지, 아니면 노백린 등 다른이가 한 것인지...아무튼 백범일지에는 김구가 이재명의 총을 빼앗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나중에 이재명이 이완용에 대한 린치 이후, 그 총이 이완용을 척살하기 위한 무기였음을 알고 자신이 그 총을 빼앗은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한다.


5. 이재명 의사의 이완용에 대한 린치

이완용을 린치한 명동성당


1909년 12월 22일 서울 종현 천주교회당(명동성당)에서 이완용은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이 작자도 인간 쓰레기로 유명한데, 콩고의 수백만의 사람을 죽인 자이다)의 추도식에 참석한다.
이재명은 이완용이 명동성당에 간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명동성당 주위에서 군밤 장수로 변장하고 있었다가, 11시 30분에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는 이완용의 허리, 어깨를 칼로 3번 찌른다.


벨기에의 도살자 레오폴드 2세의 장례식에서, 이완용은 칼을 맞는다.


문제는 이 격투 과정에서, 이완용과 이재명 사이를 막은 인력거꾼 박원문이 얼결에 칼에 찔려 죽은데 반해, 부상을 당한 이완용은 대한의원에서 최고 수준의 치료와 외과수술을 받은 뒤 살게된다. 공식적으로 한국 흉부외과 수술 1호였다고 한다.

이완용을 치료한 대한의원(현 서울대 의대)


이때 이완용을 치료한 일본인 의사가 말하기를, 외과 기술이 10년만 늦었어도 이완용은 이날 죽었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거기다가 만약에 이재명이 김구에게 총만 안 빼앗겼어도 이 거사는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6. 이재명 의사에 대한 재판

이완용 피살 기사

재판정에서 이재명은 일본인 재판장이 ‘피고(이재명)와 같이 암살을 준비한 흉악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라고 묻는다.
그러지 이재명은 ‘야만 섬나라의 불학무식한 놈아!, 너(재판관)는 흉(凶) 자만 알고, 의(義)는 모르냐. 나는 흉행이 아니고 당당한 의행을 한 것이다 라며 고함을 쳤다고 한다.
재판장은 흥분했지만, 마음을 가라 앉히고 다시한번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면 피고(이재명)의 일에 찬성한 사람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라고 묻자, 이재명은 2천만 조선동포 이다! 라고 답한다.
그러지 옳소! 하는 소리와 함께, 흥분한 조선인 방청객들이 재판정의 기물과 유리창를 부수었다고 한다.
이 소동이 일어나자, 이재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만인 왜인들은 퇴청시키고, 창밖의 한국인을 모두 입장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나(이재명 본인)는 너(재판관)의 심문에 대답하지 않겠다 라고도 말한다.
1910년 9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이재명에 대한 교수형은 집행되었다.
순국 직전에 이재명은 죽어서 수십만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 란 말을 남긴다.(1945년 이일은 일어난다)

비록 이완용 암살은 실패했지만 이재명의 칼에 찔린 이완용은, 폐렴으로 남은 생을 '쉑쉑 거리며 고통 받다가' 죽게된다.

7. 이재명 의사에 의해 얼떨결에 죽은, 인력거꾼 박원문
이재명은 사실 이완용의 암살 현장에 있다가, 뜬금없이 죽은 인력거꾼인 박원문의 죽음에 대해서 특별한 사과나 유감을 표하지 않았다.


일제시대 재판광경

그래서 일부의 비판(박노자 교수 등)이 있다.
이는 김구가 이재명은 총을 가지고 있으면, 무고한 사람들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재명의 총을 뺏은 것과 연관시키면, 김구의 이재명에대한 판단이 일리가 있었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장면이다.
아무튼 법정에서, 이재명은 박원문을 살해한 데 대해서, 무지무능한 저 가련한 노동자를 일부러 죽이려고 했겠는가? 라고 반문하며, 박원문에 대한 살해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강변한다.

이재명 의사가 인력거꾼인 박원문을 죽이려는 의사는 분명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총이 없었기에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죽고, 정작 죽어야 할 인간 이완용은 살아남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료출처/ 김영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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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