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우리가 기다린 것은 세뱃돈이었다.

설날, 우리가 기다린 것은 세뱃돈이었다.

기획특집

 

대체적으로 눈이 왔고 쌓인 눈은 길가에 수북 했다.  마른 상수리나무 꼭대기에서 까치들이 깍깍 울어대고, 사람이 사는 집들은 모두 집 앞에 쌓인 눈을 길섶으로 쓸어냈다.  흰 눈 속 에 드러난 황토의 속살 같은 흙길, 간혹 길 위 로 솟아난 돌멩이가 있다면 그 돌멩이 주변부터 눈이 녹았다.  새해가 밝았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지만 새해 첫날은 '설날'이지 않은가.  설날이면 일 년 중 가장 큰 제사, 차례를 지낸다.  아무리 추워도 모두가 웃고 다니는 날, 일 년의 용돈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정말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뱃돈을 받는다.  세뱃돈 그 달콤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야! 설날이다.

우리나라의 양대 명절은 설날 추석날이다.  물론 추석날이 여러모로 풍성하지만 그래도 설날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설날이면 가장 큰 이벤트가 기다린다.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낸 후 떡국을 먹은 다음 줄줄이 서서 웃어른에게 큰절(세배)을 올린다.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 아랫목에 좌정하면,  역시 집안의 서열에 따라서 차례로 세배를 드리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부모님이 세배를 드리고 작은아버지, 삼촌, 당숙 등으로 순번이 온다.  결혼을 한 어른들은 의례적인 절에 그치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학생인 경우는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받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아이들은 한복에 딸린 복주머니에 세뱃돈을 차곡차곡 넣어두는데, 세배 의식은 집안에서 시작하여 친척집을 한 바퀴 돌면서 하루 종일 이어지기도 한다.  큰집으로 세배를 가서 넙죽 세배를 올리고 빳빳한 천 원짜리 한 장 을 받는다.  또 작은집, 고모 집, 이모 집 할 것 없이 어쩌면 정월 한 달은 손윗사람을 찾아가 넙죽 절만 하면 세뱃돈을 받는 행운이 이어지는 달이다.  야호, 설날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린 것은 세뱃돈이었다.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은 그야말로 세상을 다 얻은 모습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일, 사고 싶었던 물건, 놀이동산, 영화관, 빵집 등등, 일마든지 할 수 있는 날이 아닌가.  빳빳한 지폐 한 장을 들고 읍내 장터를 휩쓸고 다니면서 영화도 보고, 분식도 사먹고, 구슬과 딱지도 한 뭉치 살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설날이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세뱃돈, 그 유래는 어떻게 될까?

점점 우리들의 세시풍습이 하나둘 없어지는 가운데,  빳빳한 새 돈을 주면서 덕담을 건네는 풍습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훈훈한 풍경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챙기고 아랫사람은 더 아랫사람을 챙기며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고 다독이고 지혜(덕담)를 나누고 손잡아 주고 끌어주고 다독여 주었다.  특히 아무런 조건 없이 재물을 나눠주는 특별한 날은 서양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도 할 것이다.  돈이 많아서 나눠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서로서로 작은 돈을 나눴지만 십시일반 작은 돈은 한 해의 밑천이 되는, 그렇게 또 새로운 일 년을 살아가는 종자돈의 의미도 있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살뜰히 챙기는 세뱃돈.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설날과 세뱃돈을 주는 풍습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특히 중국(홍바오)이나 일본(오도시다마)은 새해 첫날이면 복돈을 주면서 일 년의 건승을 빌고 있다.  아마도 동양사상의 끈끈함이 새해 첫날 복돈을 주는 시초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신년기원

몸 되어 사는 동안

시간을 거스를 아무도 우리에겐 없사오니

새로운 날의 흐름 속에도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희망 당신의 은총을

깊이깊이 간직하게 하소서

육체는 낡아지나 마음으로 새로웁고

시간은 흘러가도 목적으로 새로워지나이다.

목숨의 바다 당신의 넓은 품에 닿아

안기우기까지

오는 해도 줄기줄기 흐르게 하소서

이 흐름의 노래 속에

빛나는 제목의 큰 북소리 산천에

울려 퍼지게 하소서!

- 다형 김현승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70년대 시장 풍경은 대부분이 노점상이었고 설 명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읍내 공터에 연희극장 풍물대가 천막을 치고 날라리를 불었다.  소년 몇 명은 극장으로 숨어들었다.  병주는 어떻게든 코 묻은 세뱃돈을 받아왔지만 충현이는 늘 빈손이었다.  우리는 극장바닥에서 콜라병을 주워 모아 껌을 사먹었다.  그날 얼마나 극장 의자바닥을 헤집고 다녔는지 얼굴은 깜둥이가 됐었다.  그때는 서로가 너무 힘들었고 설 명절이라고 해서 제대로 된 때때옷이나 떡국 한 그릇도 맘껏 먹기 힘든 실정이었다.  그러니 세배를 드린다고 세뱃돈을 받을 희망은 매우 적었던 현실이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행복한 시절이었다.  시간은 훌쩍 지나고 이제는 세뱃돈을 받아야 할 때가 아니라 세뱃돈을 주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이번 설날에 세뱃돈을 챙겨야 할 아랫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제각각에 알맞은 세뱃돈을 봉투에 담는다.  그리고 각자에게 해주고 싶은 덕담을 생각한다.  건강 하거라. '행복 한 일 년이 되길', 좋은 직장에, 공부 열심히 해라' 등등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런 덕담을 건 네고 싶다. 올해는 꼭 시 한 편을 외워 보거라,  글 김을현 시인 삽화 박소연   대동문화 출처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