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 남침 극비문서 공개,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의 합작품

6 .25 남침 극비문서 공개,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의 합작품

 

[ 6.25 남침 극비문서]

1994년 6월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검은 서류상자 하나를 건네 주었다.

소련이 보관했던 남침계획 등을 담은 극비문서 고문서 사본이었다.

300여종의 문서에는 1949년 1월부터 53년 8월까지의 소련 외무부와 북한 외무성 간에 오간 전문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록 등 한국전쟁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극비자료가 전부 포함 되어 있었다.

문서에는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으로부터 남침계획을 승인받고, 이들과 남침 시기 등에 대해 긴밀히 협의한 내용들이 자세히 담겨 있었다.

 

김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문서들을 통해 남한의 종북좌빨 성향의 이데올로기들이 주장해온 북침설이나 수정주의가 완전히 허구였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고 기록하였다.

 

  (『김영삼대통령회고록』298~299쪽)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2007년4

  월23일 사망한 옐친 전 러시아 대통

  령은 이렇게 한국과 인연이 깊다.

  91년~99년 대통령 재직기간 세 차례

  나 한국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정도다.

  ◆ 김일성의 남침기획 과정이 소상

  히  담겨 옐친이 넘겨준 문서에 따르

  면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한달전인 50년 5월29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당시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소련이 지원한 무기와 장비가 이미 대부분 북한에 도착했다” 면서 “이제 6월까지 완전한 전투준비를 갖추게 됐다”고 통보했다.

북한의 남침이 김일성의 기획과 소련의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자료였던 것이다.

이에 앞서 50년 5월 14일 스타린이 모택동에게 보낸 특별전문에는 “국제정세변화에 따라 통일에 착수하자는 조선인들의 요청에 동의 한다” 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에 모택동은 중국이 북한 김일성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스탈린에게 전달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 옐친이 전달한 고문서 주요 내용◆

▶1949년 3월 5일 김일성-스탈린 정상회담/ 김일성이의 무력에 의한 조선통일에 관한 소련지도부의 견해 타진.

▶1949년 8월14일 김일성, 슈티코프 북한 주재 소련대사에게 조속한 대남 공격 필요성 주장

▶1950년4월 김일성-스탈린 모스크바에서 남침회담. 스탈린, 북한의 무력통일 과업에 동의.

▶1950년5월14일,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무력통일에 착수하자”는 “김일성의 요청에 동의 한 다” 는 전문을 보냄.

▶5월15일 모택동이 북한의 3단계 남침계획에 동의.

▶6월25일 북의 기습남침 한국전 발발.

▶9월29일 김일성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뒤 스탈린에게 친서를 보내 소련과 중국의 직접 전쟁 개입을 간절히 요청.

1950년 9월 28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자 당시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다시 친필 서한을 보내 “북한군 자력으로는 38선 이북을 지킬 수 없다”며 소련과 중국군의 즉각 전쟁 개입을 애절히 요청한 사실이 기록된 문서 내용이었다.

★ 소련의 스탈인은 51년 3월3일 북한에 소련군 2개 항공사단과 트럭 6000대를 공급한 것으로 확인됬다.

★ 이 문서들은 현재 한국의 외교사료관에 보관중이다 ★

그런데 이 자료들을 국민을 위해 당연히 공개하고 좌익 민통당원들의 북침주장 입을 막고 이에 대한 국민들 간의 국력소모 침략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옳지 않았는가?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에만 밝혔고 그 이후 빨갱이 대통령들과 정치인들은 10년간 이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다물었고 건망증 심한 국민들간의 계속된 논쟁을 즐기기만 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좌익정부시절 통일부 장관에게 기자들이 북침설에 대한 입장을 묻자 묵묵부답이었지 아니한가?

저들의 태도는 김일성이 지시에 따른 북침임을 국민들에게 암시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표현의 자유를 내새운 빨갱이 정치인들의 이적행위를 결코 이제 국민들이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문성근이 정치인 무리들은 죽창을 들고 시민군이 되어 나서라며 백만 민란을 선동하는 행위가 어찌 용서될 수가 있겠는가?

지도자는 사회평화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거늘 어찌 남의 일처럼 팔장만 끼고 있는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한 극비문서는 우리 국민의 피나는 세금을 소련에 제공한 차관의 댓가로 옐친이 우리국민에게 전한 것이며 60여년전 400만 살인자 김일성과 모택동 스탈린이 합세한 625 기습남침에 대한 진상을 인류에게 고발한 고문서이기에 6.25 당시처럼 그 내용을 역사 교과서에서 후세들을 위해 반드시 교육해야 한다,

소련이 우리국민에게 전한 위 고문서는 결코 특정 정치인들 소유 문서가 아니며 민주국가 국민들의 소유이기에 진실교육을 위해 당장 널리 공개 하여야 한다.

전쟁 당시 한반도가 폐허의 잿더미로 변했고 피비린내 진동하는 6.25의 민족간 전쟁 비극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세대들의 전쟁 진실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바로 잡지 않음은 정치인들의 진정한 임무를 저버린 태도이며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며 당신들 후대의 가문에 대한 국민 평가는 분명 국가를 배반한 역적들로 기록될 것이라 본다.

일본의 침략보다도 수백 배 잔인했고 현재도 침략을 계속 중인 북한의 침략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100여년전 한일 간의 어두운 역사 중 부정적인 부분만을 부풀리고 허위 역사만을 강조 교육하는 이면에는 북한의 비밀 교시에 담긴 내용에 따른 종북 무리들의 김일성의 동족 300만 살인행위를 감추며 전후세대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비켜 가자는 전략임은 세계인이 이미 간파한 사실이다.

 

 

= 6. 25 전쟁의 진실=

https://youtu.be/PYY7pDNExG0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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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