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입을 잘 단속하고

자신의 입을 잘 단속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 잡아라

몸으로 악한 행동을 저지르지 말라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가게 되리라. <법구경>

 

인도의 상가세나 스님이 쓴 <백유경>에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의 흉을 잘 보는 어떤 사람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방안에 앉아서 밖에 있는 어떤 사람의 흉을 보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밖에 있던 어떤 사람이 이내 방으로 들어와 그의 멱살을 움켜 잡고 주먹으로 때렸다.  이 모습을 본 사람이 두 사람을 다 나무랬다.

 

“당신은 왜 함부로 남의 흉을 보고 왜 당신은 무턱 대고 사람을 때리는가.”

“이 사람이 나에게 화를 잘 내고 경솔하다고 흉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을 때린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 당신은 지금 저 사람의 말대로 경솔하여 화를 잘 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허물을 먼저 닦아라.”

그제야 어떤 사람은 머리를 숙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흉을 보던 사람도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화를 낼 때도 있으며 남에게 경솔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도 한 번 쯤 참아내는 인성(人性)을 기르는 것이 좋다.  남이 자기의 허물을 말할 때에 화를 내게 되면 오히려 남들은 흉을 본 사람보다 화를 낸 사람의 어리석고 미혹함을 탓하는 경향이 많다. 왜냐하면 그 허물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술에 취하지 않는 사람을 나무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화를 참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방편 같은 것이다.

 

화에 대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태조 이성계는 장군시절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봉사에게 점을 보았다.  그는 봉사가 펴 놓은 글자 중에 하나를 짚었다. 그 것은 물을 문(問)자였다.  봉사는 이에 대해 “우문좌문(右問左問)하니 걸인지상이요”했다.  이리 저리 물어보나 영락없는 걸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봉사는 눈이 멀었음으로 점을 본 사람이 장군임을 알 까닭이 없었다.  이성계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 그 봉사를 죽이고 싶었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이것은 나의 덕이 부족한 탓이다. 보리암에 가서 백일 동안 기도를 해야겠다.’

그는 부처님에게 지성껏 백일기도를 드린 후에 그 점쟁이를 찾아 와 다시 점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다시 뽑은 한자도 물을 문자였다. 봉사는 이에 대해 “우문좌문 군왕지상”이요 했다. 즉 이리 저리 물으나 군왕의 상이었다는 말이다.  이성계는 그리하여 왕이 되었다.  지극히 자신의 화를 짓눌렀던 결과 그는 부처님의 공덕을 쌓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미화된 이야기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화를 참는 것은 자신에게 아주 소중한 일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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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