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록유산 '직지(直指)'

JIKJI 청주고인쇄박물관

 

 

 

 

 

 

 

 

세계 기록유산 '직지(直指)'

 

지금까지 최초의 금속활자 간행본으로 알려졌던 독일 구텐베르크의「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고려 우왕 3년(1377년청주 흥덕사에서 발간된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인쇄 본인 직지(直指)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실는 2001년이어 2004년 4월 유네스코 직지상이 제정됨으로서 우리 대한민국 청주가 세계인쇄문화의 발상지임이 여실히 입증되었다.

 

 

 

 

금속활자의 기원

 

금속활자 인쇄술을 처음으로 발명한 민족은 바로 고려시대의 우리 선조들이다. 금속활자 인쇄술의 기원은 여러 가지 학설이 늦어도 12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상정예문 등이 1200년대에 발간되었다고 하나 현존하지는 않고 있다. 실물로 확인되는 금속활자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尚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일책이 있다.

 

 

이 책은 고려시대 1377년 청주 (흥덕사興德士)에서 금속활자(金屬活字)로 인쇄하였다. 이는 바로 독일 구텐베르(JonamnGuterberg)가 최초로 인쇄했던「42행 성서」(1455)보다 무려78년이나 앞선 것이다. 197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출품되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인쇄술은 더욱 활발하게 발전되었다.

 

1403년(태종 3년)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금속활자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그 꽃을 피우게 되었다. 동활자는 1403년에 만든 계미자癸未字)와 1436년에 만든 병진자丙辰字)의 글자를 시작으로 16세게 최까지 제작되었다. 철활자는 16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 후기에는 개인에 의해서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금속활자만 하더라도20여종이나 되는데 특히 1403年의 갑인자甲寅字등 우수한 금속활자를 주조하여 질 좋은 많은 책을 간행刊行하였다.

위와 같이 금속활자(金屬活字)가 주조(鑄造)되고 직지가 인쇄된 것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없다.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

 

인류의 역사는 4차에 걸친 지식 정보혁명을 통해서 발전하였다. 첫 번째로는 서로의 약속된 몸짓이나 소리 등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였으며, 두 번째는 문자나 각종 부호를 사용한 기록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였다. 세 번째는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책을 간행함으로써 대량의 정보전달이 가능하였고, 마지막이 컴퓨터의 발명으로 초고속, 초대량 검색이 가능한 정보를 전달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정보혁명은 금속활자의 발명을 꼽고 있는데, 그 이유는 활자를 이용하여 책을 간행, 보급함으로써 지식 정보의 대량 전달로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화의 가장 핵심인 금속활자의 발명은 13세게 초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그 예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尚頌證道歌),와 상정예문辟定禮文),이 있으나 기록으로만 전할 뿐 실물이 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377년(고려 우왕 3) 7월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尚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실물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전한다.

우리 민족이 금속활자를 창안하여 발전시킨 슬기로운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존재하고 있다.

 

금속활자본 직지가 인쇄된 곳

 

청주는 백제의 상당현이었다가 고구려가 점령한 이후에는 낭비성,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서원경이라 불렸으며, 고려 때는 청주목이라 불린 유서 깊은 고을이다.

 

 

 

 

1985년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서원부흥덕사西原府興德寺"라고 새겨진 쇠북(금구)가 "황통 10년흥덕사皇統十年興德寺"라고 새겨진 청동 그룻(불발)이 출토되어 이곳이 직지의 간행 기록에 나오는 청주목 흥덕사 절터임이 확인되었다 (1986년 5원7일 흥덕사지(사적 제315호)로 지정)

 

흥덕사 터 출토유물

 

 

직지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731에 위치하고 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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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