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누리는 울창한 숲은 궁핍 속에서도 나무를 심었던 앞선 세대가 만든 것이다. 숲은 한 세대가 소비하고 끝낼 자원이 아니다. 받아서 더 나은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야 할 세대 간 유산이다.
9,619건의 기록이 증명한 녹색의 전환 『산림녹화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미와 가치
불과 반세기 전, 한반도의 산하는 누런 황톳빛 민둥산이었다. 그러나 2025년 4월, 세계는 이 절망의 풍경을 녹색의 바다로 뒤바꾼 대한민국의 저력에 다시 한번 주목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뿌리 내린 9,619건의 『산림녹화기록물』이 그 투명한 과정과 공동체적 실천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00. 사방사업 시행 전(상) 01.1년 후(중) 02.3년 후(하)의 복구된 모습(1964년 충남 대덕 산내)
불과 반세기 전, 한반도의 산하는 누런 황톳빛으로 드러나 있었다. 비가 오면 붉은 흙탕물이 쏟아졌고, 헐벗은 민둥산은 가난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1960년대 헥타르(ha)당 임목축적은 5.6㎥에 불과했으며, 전국 산림의 40~50%가 민둥산이었다. 그러나 2025년 4월 10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전해진 소식은 그 황폐했던 풍경을 뒤집어 놓은 ‘기록’의 국제적 인정이었다. 바로 대한민국 『산림녹화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쾌거였다.
이번 등재로 한국은 총 20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숫자에 있지 않았다. 세계기록유산이 요구하는 진정성, 완전성, 세계적 중요성을 충족한 기록이라는 점, 즉 한 사회가 환경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했는지를 입증하는 자료라는 데 있었다. 유네스코가 이 기록물에서 주목한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계획에서 집행,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이 투명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등재된 9,619건의 기록물은 관보와 법령, 공문서에서 조림 대장, 현장 사진, 영상, 홍보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산림 녹화의 전 과정을 망라했다. 성과의 요약이 아니라 과정의 축적이었던 셈이다.
전국 2만 3,000여 개 마을에 조직된 산림계(山林契)는 주민이 직접 심고 가꾸고 지키는 공동체 조직이었다. 계원들은 묘목을 양성하거나 사들여 심었고, 조림 실적을 장부에 기록했으며, 산불 감시를 분담했다. 이 같은 현장 기록은 정책이 위로부터 내려온 명령이 아니라 아래에서 참여하고 실천되었음을 의미하였다.
화전 정리 과정에서 마찰과 조정의 흔적 또한 행정 문서와 보고 자료에 남아 있다. 미화된 성공담이 아니라 정책 집행의 긴장과 설득 과정까지 포함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유산은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학습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되었다.
1973년 시작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은 국가의 장기 전략이었다. 1960년대 헥타르당 5.6㎥이던 임목축적은 1970년대 초 10㎥ 수준에 머물렀다. 산업화가 급박했던 시기, 정부는 경제개발과 함께 산림 복원을 국가 과제로 설정했다.
숲의 회복은 복합적인 과정이었다. 연탄 보급 확대는 산림에 가해지던 압박을 줄이는 여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토대 위에서도 수십 년간 지속된 조림 실천이 없었다면 오늘의 녹색 국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환경학자 레스터 브라운은 “한국의 국토 녹화 사례를 따른다면 헐벗은 지구도 녹화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이를 개발도상국이 참고할 수 있는 드문 성공 모델로 평가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 역시 이 사례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단기 산림 복원의 성취로 기록하고 있다.
그 성과는 수치로도 분명하다. 2020년 기준 헥타르당 임목축적은 165.2㎥로, 1960년대 출발점의 약 29배에 이른다. 이번 등재는 그 변화가 우연이나 일시적 열정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지속적 실행, 그 전 과정을 남긴 기록의 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다.
1975년 국민식수기간 특별우표
산림녹화기록물의 가치는 과거의 성취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한 거버넌스 방식, 계획에서 실행·평가까지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이 모델은 오늘날 산림 황폐화에 직면한 개발도상국이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녹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다양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과 국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전수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은 특정 시대의 성공담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 이전할 수 있는 정책 자산이라는 점이 이 유산의 진정한 힘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울창한 숲은 궁핍 속에서도 나무를 심었던 앞선 세대가 만든 것이다. 숲은 한 세대가 소비하고 끝낼 자원이 아니다. 받아서 더 나은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야 할 세대 간 유산이다. 9,619건의 기록은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성취의 훈장이 아니라 숲을 복원한 나라를 넘어 숲을 책임지는 나라로 나아가라는 시대의 요청이다.
출처 : 자료 전영우(국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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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