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즐기던 삼국 시대 사람들

고대부족국가에서 농경 제천의식이 시작되는데, 이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명절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농경제천의식에서 비롯한다.

명절을 즐기던 삼국시대 사람들

고대부족국가에서 농경 제천의식이 시작되는데, 이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명절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농경제천의식에서 비롯한다. 신라 유리왕대에 한가위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백결선생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새해가 되었을 때 떡을 해먹었다고도 한다. 이를 통해서 명절의 기원은 농경의례에서, 또 명절음식의 기원은 농사지은 곡물의 가공을 통해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삼국기대부터 지내기 시작한 명절도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전에 등장한 부족국가에서 영고, 동맹, 무천과 같은 농경 제천의례가 진행되었다. 곡식의 수확이 이뤄지는 10월, 혹은 파종을 하는 5월에 이뤄지던 제천의례와 추석과 같은 명절이 지니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둘 사이에 긴요한 관계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명절이 직접 제천의식을 계승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12세기의 문헌인 『삼국사기』에 추석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이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서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것을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위 기록을 보면 여러 여인이 모여 집단으로 길쌈을 했다고 했다. 길쌈은 옷을 만들기 위한 직물, 즉 옷감을 짜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므로 결국 유리왕대 이뤄진 이 행사는 겨울을 보낼 의복 마련과 관련된 일인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옷감을 짜는 풍속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농경을 하면서 정착을 하게 되었고 계절과 기후의 변화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하여 세시 명절은 농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세시 명절인 한가위는 고대 농경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신라시대에는 이미 일반화된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길쌈-단원 풍속도첩(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한 해를 시작하는 명절인 설과 관련된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 「열전」 〈백결선생〉에 전하는 이야기와 『삼국유사』 「기이」 「사금갑」에 전하는 이야기의 부분을 소개한다.백결선생은 어떤 내력을 지닌 사람인지 모른다. 낭산 아래에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하여 옷이 해어져 백 군데나 잡아매어 마치 메추라기 달아 맨 것과 같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동리의 백결선생이라고 불렀다. (중략) 새해가 되어 이웃에서는 방아를 찧는데, 그 아내가 방아 찧는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남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방아를 찧는데 우리만이 없으니 어떻게 이 해를 보낼까” 하였다. 선생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기를 “무릇 死와 生은 命이 있고 富와 貴는 하늘에 달리었으니, 그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따를 수 없거늘 그대는 어째서 상심하는가. 내가 그대를 위하여 방앗소리를 내어 위로 하겠소”라고 말하고, 이에 거문고를 타며 방앗소리를 내니, 세상에서 전하여 이름 하기를 ‘대악'이라 하였다. (전략) 이로부터 나라의 풍속에 매년 정월 첫 돼지날・첫 쥐날・첫 말날에는 모든 일을 삼갔으며 15일을 烏忌日(오기일)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사지내니 지금에도 행하고 있다.

다른 한 편, 우리는 백결선생과 관련된 기록에서 새해 첫날인 설날에 떡을 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떡이 쌀이나 찹쌀, 조 등과 같은 곡식을 가공하여 만드는 음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역시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사금갑」조의 후반에 전하는 이야기(매년 정월 상해 · 상자 · 상오일에는 백사를 삼가 감히 동작을 아니하고, 15일을 오기일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사지내니 지금에도 행하고 있다. 自爾國俗每正月上亥上子上午等日, 忌愼百事, 不敢動作, 以十五日爲烏忌之日, 以糯飯祭之, 至今行之.)는 요즈음 정월 대보름을 보내는 풍속과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찰밥을 지어 제사 지내고 먹으며 보름을 보내는 일은 지금도 하고 있다.

위의 기록들은 우리가 언제부터 명절을 지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고대부족 국가에서 시작된 농경의례, 혹은 그보다 오랜 연원을 지닌 농경세시, 또 지금 명절을 보내는 방식과 유사한 풍속을 통해서 명절의 연원이 매우 오래되었으며 그 뿌리는 농경의 출발과 닿아 있음을 추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농경은 단순히 식생활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만이 아니라 농경을 중심으로 한 우리 삶의 주기와도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유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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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