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제국(諸國), 베일을 벗다 ‘가야 문명의 길’

2천 년 역사를 되짚으며 ‘가야 문명의 길’을 따라 걸어본다.

가야 제국(諸國), 베일을 벗다 ‘가야 문명의 길’

누구나 자신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남긴다. 수천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후대는 그 흔적을 유물, 유적이라는 단어로 압축하지만, 그것은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이자 여정이다. 2천 년 역사를 되짚으며 ‘가야 문명의 길’을 따라 걸어본다.


00.드론으로 촬영한 수로왕릉과 전각



가야 문명의 길을 찾아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창 대립하며 성장할 무렵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전역과 경상북도 및 전라도 일부 지역에는 여러 부족이 있었다. 아직 고대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기 전이라 왕 대신 ‘간’이라고 부르는 족장이 부족을 다스렸다. 어느 날이었다. 각 부족의 간이 산꼭대기에 함께 올라 모여 노래했다. “거북아 거북아 / 머리를 내밀어라 / 내밀지 않으면 / 구워서 먹으리.” 바로 임금의 출현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구지가(龜旨歌)’였다. 이로써 가야 제국(諸國)이 건국되었다.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등이 잘 알려져 있으며 전기 가야만 해도 15국, 후기 가야가 번창했을 때는 22국에 달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가야의 역사는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와 연합해 가야를 공격했던 때를 전후해 전기 가야와 후기 가야로 나뉘고 전기 가야의 중심 국가로 금관가야를, 후기 가야의 중심 국가로 대가야를 꼽는다. 드론으로 촬영한 수로왕릉과 전각 ‘가야 문명의 길’은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가야 제국을 탐방하는 길이다.

특히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고분군을 중심으로 엮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야의 대표적인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합천 옥전, 고령 지산동, 고성 송학동,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창녕 교동과 송현동 등 7곳이다. 한편 이곳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되어 현재 본격적인 세계유산 등재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한번에 모든 고분군을 돌아보기에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으므로 여건상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탐방한다면 가야 제국의 비밀 앞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01.국보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02.숭선전 춘·추향대제를 준비하는 진사청과 제기고 03.보물 부산 복천동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 김해박물관 소장



가야 제국의 맹주 금관가야

김해의 금관가야는 가야 제국의 맏형에 해당한다. 일연의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금관가야는 수로왕이 42년에 세운 후 532년 구형왕이 신라에 투항할 때까지 10대의 왕을 거치며 491년간 존속했다고 한다. 금관가야의 출발점을 확인하기 위해 처음 도착한 곳은 구지봉이다. 구지봉 정상은 원형의 너른 터에 주변엔 소나무가 울창하다. 하늘에서 본다면 원형경기장을 닮았겠다.

사적인 김해 구지봉에 42년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황금 상자가 내려왔다. 그 속에는 여섯 개의 알이 있었는데 그중 제일 먼저 나온 사람이 금관가야 즉, 가락국을 건국한 수로왕이다. 구지봉 한편에 놓인 커다란 바위는 기원전 4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남방식 고인돌이다. 바위에는 ‘구지봉석(龜旨峰石)’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전한다.

구지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봉긋한 봉분이 보인다. 사적 김해 수로왕비릉이다. 왕비는 16세의 나이에 인도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와 왕비가 되었고 157세에 세상을 떠났다. 능 앞에는 특이한 형태의 파사석탑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수로왕비가 인도에서 건너올 때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싣고 왔다고 한다. 돌은 둥글넓적하고 붉고 옅은 무늬로 뒤덮여 있다. 게다가 한반도에는 없는 성분의 돌이라고 한다. 놀라울 따름이다.

구지봉에서 수로왕비릉 반대쪽으로 향하면 조붓한 숲길이 나온다. 수목이 우거진 데다 계절마다 화사한 꽃이 피고 그늘이 넉넉해 산책 삼아 거닐기 좋다. 길이 끝나는 곳엔 국립김해박물관이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시대 흐름에 따라 유물을 챙겨 볼 수 있다. 유난히 철기 관련 유물이 많은데 이것은 김해가 철의 주요 생산지로서 우수한 철기 생산 능력을 갖춘 철기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금관가야는 가야 제국의 맹주답게 철을 매개로 중국 동북지역은 물론이고 왜와도 활발하게 교역했다.

04.수로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숭선전 05.능침 높이가 약 5m에 이르는 수로왕릉



김해박물관을 나서면 해반천을 끼고 ‘가야사 누리길’을 따라 걷는다. 가야시대의 다양한 유물을 모티브로 한 조형물과 설치작품이 눈길을 끈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 사적 대성동고분군과 대성동고분박물관 앞에 이른다. 고분군은 여느 고분과 달리 봉분이 없는 언덕처럼 생겼다. 그 이유는 흙을 높이 쌓아 만들었던 다른 가야고분군과 달리, 나무관을 넣어 두는 널방을 가진 덧널무덤(木槨墓)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분군 정상부에 올라서면 탁 트인 전망에 기분마저 상쾌하다. 대성동고분군은 9차례 발굴을 통해 모두 304기의 무덤이 드러났다. 시대별로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가 순차적으로 축조되었다. 또한 고분의 위치에 따라 구릉 정상부는 왕의 무덤, 능선부는 지배자들의 무덤, 구릉 주변 저지대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보인다. 부장품은 손잡이 달린 화로 모양의 금관가야식 토기와 중국에서 수입한 청동거울등 매우 다양하다. 부장품과 고분 양식은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서 사적 김해 수로왕릉에 이른다. 숭화문을 지나자 악귀를 쫓는다는 홍살문이 우뚝하다. 그 뒤로 가락루와 납릉정문을 지나면 수로왕릉이다. 납릉정문은 능침의 정문으로 1792년에 세워졌다. ‘파사석탑(婆娑石塔)’과 ‘쌍어문(雙漁紋)’ 문양이 새겨져 있어 인도와 교류한 흔적을 나타내는 단서로 여겨진다. 능침의 높이는 약 5m에 이른다. 제단 앞 비문에는 ‘가락국수로왕릉(駕洛國首露王陵)’이라 적혀있다. 묘비는 1647년에, 숭선전은 1865년에 중수했다. 숭선전은 수로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곳이고, 그 우측 숭안전은 가락국 2대에서 9대까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곳이다.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춘·추대제를 치르는데 제례 행사가 독특하여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06.창녕 송현동고분군    07.고성 송학동고분군



흩어져 있는 ‘가야 고분군’

가야의 중심고분군은 김해 대성동고분군 외에 여섯 곳이 더 있다. 먼저 5~6세기에 가야 북부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대가야의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이 대표적이다. 지산동 고분군은 그 당시 토목 기술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크고 작은 고분이 신분과 집단에 따라 여러 군집으로 나뉘어 배치된 점이 특이하다. 이외에 아라가야의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은 약 2km에 달하는 주능선을 기준으로 여덟 갈래의 능선에 웅장하게 조성되어 있다. 다라국의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은 무덤 내부에서 금동관, 은제관, 금귀걸이 등 장신구, 철제 갑주와 말 갑옷 등 최고수장급 유물과 유리잔(로만글라스)이 출토된 곳으로 유명하다.

비화가야가 있던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은 화왕산 기슭에 위치해 봄가을 화왕산을 찾는 탐방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은 중국~백제~가야~왜를 연결하는 해양교역로의 중심에 조성된 지배층의 고분군이다. 마지막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사적)은 호남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가야와 백제의 문화가 융합된 고분군이다. 약 600년간 존속했지만 1,400년 동안 승자 독식이라는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졌던 가야 제국. 그 찬란했던 문화가 ‘가야 문명의 길’을 통해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김해시청 문화관광해설사 김점숙 숭선전 춘·추향대제(음력 3월 15일, 음력 9월 15일)는 전국의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후손들이 숭선전과 숭안전에 모여 제사를 봉행하는 행사입니다. 이 대제는 신라에 의해 가락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계승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특히 1792년(정조16년)에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릉 춘추시향의 전교가 내려져 국가에서 관리했을 정도로 의미가 깊습니다. 제례는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과 왕비이 신위를 봉안한 숭선전과 2대부터 9대까지 8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숭안전에서 동시에 거행됩니다.






함께 방문하면 좋은 김해의 문화재 


사적 김해 분산성


김해 동북쪽에 있는 분산(330m) 정상부를 머리띠처럼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최근 SNS를 통해 사진 촬영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김해평야와 김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이 볼만하다. 위치 경남 김해시 가야로 405번안길 210-162 문의 055-330-3925




사적 김해 봉황동 유적


봉황동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회현리 패총과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가 합쳐져 확대 지정된 곳이다. 청동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유적과 유적을 이어주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위치 경남 김해시 봉황동 253번지 외 문의 055-330-3589 여행 문의 수로왕릉 055-332-1094, 대성동고분박물관 055-350-0401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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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