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은 기억해주렴, 우리의 사랑을

가정폭력피해 여성을 위한 ‘쉼터’, 미혼모를 위한 시설, 가출 청소녀를 위한 그룹홈을 운영하는 착한목자수녀회의 사도직은 만만치 않다. 여성차별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과 싸워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이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날수록 수녀들은 놀라운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다.

꼭 한번은 기억해주렴, 우리의 사랑을  (김혜선 플라치다 수녀 ,착한목자수녀회)

때때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
마음 밭은 갈라지고 물기 없이 메마른 시간이 있다.
그 순간에도 하느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당신의 사랑을 알려주신다.



마지막 한 마리 양까지

"제기 너무 힘든 적이 있었어요. 자양동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날이었어요. 미사를 하면서 거의 앉아 있었지요. 누가 살짝이라도 치면 금방 울어버릴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마음에는 온갖 불신과 악으로 가득 차 있있죠. 미사가 끝나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한 할머니가 수녀님 !' 하고 불러요.


제가 평화의 인사를 해 놓고도 저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어서 옆에 누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거죠. 할머니는 수녀님, 제가 너무 힘들었는데 수녀님이 이렇게 옆에서 미사도 해주시고 기도도 해주셔서 이제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하시는 거예요.”



김혜선 플라치다 수녀는 다른 때 같으면  "어머, 자매님!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며 손이라도 잡았을 텐데…. 그날은 "네, 네. 하고 인사만 한 뒤, 서둘러 성당을 나왔다. 수녀원까지 오면서 계속 울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상황이어도 수도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한 분이라도 생명을 다시 받게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녀가 선택한 삶이 무엇인지 직면한 '회심의 순간이었다. 내 마음이
엉망이어도 마지막 한 마리 양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착한 목자 예수님을 따르는 삶,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구나, 나의 길이구나'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피해 여성을 위한 ‘쉼터’, 미혼모를 위한 시설, 가출 청소녀를 위한 그룹홈을 운영하는 착한목자수녀회의 사도직은 만만치 않다. 여성차별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과 싸워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이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날수록 수녀들은 놀라운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힘에 용기를 얻고 좌절과 절망의 순간이 밀려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 수녀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외할머니의 장례미사 때 처음으로 성당에 가보았다.
신부님 옆에서 복사를 서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성당을 찾아가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았다.




가슴에 뭐가 '쿵'하고 떨어지는

“집안 전체가 가톨릭은 아니었어요. 이버지가 종교는 자유롭게 가져도 좋다고 하셔서 세례는 받았는데, 나중에는 후회하셨죠. 수녀원까지 갈 줄은 몰랐다고요. 외할머니는 저희 가족과 함께 사셨는데,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외할머니에게 '안나'라는 세례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세례를 받고 나니 한 친구가 ‘자기는 수녀님이 될 거라고 해요. 그럼 함께 되지 뭐’ 하고 말했는데 그 친구는 결혼했어요. 다른 친구가 착한목자수녀회에 입회를 했고 수녀원에서 매일 저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오늘은 당근케이크를 만들었어. 오늘은 김치를 담구었어. 이런 이야기들이었죠. 수녀원이 이런데야? 정말 피곤하다. 말하면서도 신기하니까 계속 읽었죠. 어느 날 그 친구를 면회하러 춘천에 있는 수련원에 갔는데 맞은편에 들이 넓은 집이 있었어요. 미혼모를 위한 시설이었어요. 친구는 아이를 가진 십 대 아가씨들이 아이를 낳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열여섯 살도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뭐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김 수녀는 계속 마음속에서 무언가 복받쳐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 그 어린 소녀가 아기를 낳는다는 걸 그때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벌써 삼십 년 전이니, 발육상태도 안 좋을 때였다. 그 나이에 그런 큰일을 겪는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수녀는 일 년간 성소 모임을 하고 입회하게 되었다.


한 사람은 온 세상보다 소중합니다."
수도회 창립자 성 요한 에우데스 신부(1601 ~ 1680)의 이 말은

사도직에 임하는 김 수녀의 마음이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이 나서는
예수님처럼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마태 18,12-12 참조)


정말 중요한 것은 품어주는 마음

"자양동에 자리 잡은 지는 사십오 년 되었어요. 이쪽이 가내수공업 단지였는데 남자 기술자들의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는 여성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숙사를 세웠죠. 스물다섯 명까지 있었어요. 그녀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했어요. 대학생들이 와서 공부를 가르쳐주었죠. 필리핀 수녀도 있었는데 항상 수녀원 대문을 열어 놓아서 외국인 노동자들도 언제든 들어와 쉴 수 있었어요. 야학에서 공부했던 근로자와 교사들은 아직도 일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지고 있어요.“

근로환경이 개선되면서 기숙사는 의미가 없어졌다. 수녀회는 가출 소녀들을 위한 돌봄이 필요함을 느꼈다. 1999년 수녀회 창설자인 성녀 마리 유프라시아펠티에 (179-1868)의 이름을 딴 ‘가출 청소녀를 위한 쉽터’를 마련했다. 한국 최초의 청소녀 그룹홈 이었다. 김 수녀는 가출 소녀가 아니라 탈출 소녀라 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 집을 나오는 거예요. 빈곤과 방임,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어요. 쉼터에 오기까지 십 대 소녀들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달프고 가여워요.“

코로나19로 답답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음장치를 히고 노래방 기계도 마련했다. 만화 카페까지 만드니 너무 좋아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이도 많다. 성인이 될 때 독립을 도와주는 자립관도 만들었다. 작년에는 강원도 내 이주여성의 인권확보를 위한 ‘강원이주여성상담소’를 춘천시에 열었다.
위급한 상황의 여성을 위한 '여성긴급전화 1366'도 운영하고 있다.
김 수녀는 현재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쉼터'에서 일한다. 이십 대 초반의 외국인 엄마와 아이들이 많이 온다. 처음 올 때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마르고 말도 어눌하지만, 자주 안아주고 조금만 잘 먹게 하면 볼에 동그랗게 살이 오른다. 아이와 엄마 모두 안정을 찾아 밝아진다.


수도원 성당 내부

변수운 비올라 선배수녀와 서울 수년원 뜰에서

강원이주여성상담소 개소


가랑비에 젖어 드는 것처럼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서서히 깨닫는다.
그래서 수녀들은 기도드린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며 살아왔던 순간이 한 번이라도 그들의 인생에 '빛'으로 남기를
'한 번은 사랑받았어' 기억하기를 ..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하느님

“사람들이 한 번씩 질문해요. 돌보시는 분들을 다 구원으로 이끄시나요? 그런데 사실 저희가 좋게 변화시키는 분은 몇 분 안 돼요. 그런데도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희 수녀들 모두 엄청나게 밝거든요. 창설자 유프라시아 수녀는 저희 수도회의 사도직을 위해 기도와 노동으로 함께 할 관상 수녀회를 만드셨어요. 늘 저희 곁에서 기도해주시죠. '지금, 어떤 이가 매를 맞고 돌아왔어요. 남편이 위협을 해요, 엄마 배 속에서 아기가 거꾸로 있어요. 등... 급할 때는, 늘 기도요청을 드리조, 저희에게 기도를 청하시는 분이 있으면 그 지향도 전해 드리고요. 정말 든든한 아군이죠.”

"아이들이 수녀회의 보호를 벗어나서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 다시 성매매하러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때 그 아이의 일을

공개적으로 말하지만 않았어도 그 아이는 떠나지 않고 고등학교는 졸업했을 텐데, 내가 규칙보다 사랑으로 한 번만 더


안아주었다면 다시 거리로 나가지 않았을 텐데..' 이런 후회와 대못들이 수녀들의 마음에 다 있어요.
그런데도 좌절하지 않는 것은 창설자 수녀께서 저희 수도회에 주신 말씀 때문이에요. 열성을 다해라,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이 반드시 채워주신다.' 수도회 회헌에도 ‘그들의 구원과 우리의 구원이 분리되지 않는다.’ 알려줍니다.

그러기에 희망을 잃지 않고, 그들을 사랑했던 우리의 사랑이 그들의 삶에 한순간이라도 '빛'으로 기억되기를 늘 기도하고 있죠.“


삶은 기나긴 여정이다.
작고 큰 상처와 후회가 있지만 하느님은 온전히 우리를 받아주시며
당신의 자비 안에 편히 쉬기를 바라신다.
당신의 사랑 안에 행복하길 원하신다



계곡물을 뚫고 들리는 통곡

사도직을 하다 보니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 성(性)에 대한 가치관이었다. 미국인 한나 클라우스 수녀가 만든 국제 성교육 프로그램인 틴스타(TeenSTAR)를 도입하고 싶었다. 현재 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수녀회의 배미진 수녀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많은 자료를 모아오면서 준비되었다. 2004년 한국에서 정식으로 한국 틴스타가 출범되었다. 몸이 가진 고유한 인격을 자각하고 책임감 있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다. 한국틴스타는 2010년도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에서 주는 '생명의 신비상'도 수상했다. 받은 상금으로, 낙태로 인해 고통받는 분들을 위한 무료 치유피정을 시작했다.


낙태 피정 프로그램


"지금까지 한 칠백 분 정도 다녀 가신 것 같아요. 큰 규모로 하지는 않았어요. 여성의 몸 자체가 생명을 지어 내도록 창조되었는데, 그 안에서 생명이 죽어 나갔을 때 받는 상처는 상상할 수 없어요. 어떤 분은 언어장애가 오기도하고, 어떤 분은 계속 상처가 따끔거리죠. 늘 수술대의 가위소리를 듣고 소독약 냄새를 맡는 분도 있어요. 첫날에는 자신의 전체 삶을 돌아보게 해요. 낙태라는 사건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전 생애를 돌아보게 하죠. 저희가 피정 기간 동안 통곡하는 자리가 있는데 그 울음소리가 계곡물을 뚫고 들렸어요. 어디 가서 말한마디 못하고 삭였던 아픔들을 쏟아내시는 거죠. 아이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잘 있으니 고해성사를 믿으시고 죄에 짓눌리지 않기를 기도드리죠.”

김 수녀는 기도하다 보면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눈을 통해 연민의 마음은 샘솟는다. 그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그 마음이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김혜선 플라치다 수녀의 착한목자수녀회는 어떤 곳일까요

시작
성녀 마리 유프라시아에 의해 1835년 창설되었다. 1641년 성 요한 에우데스 신부에 의해 설립된 수녀회에 뿌리를 둔다. 한국에서는 1966년, 여성기술학교를 시작으로 가장 돌봄이 필요한 이들과 자신의 죄의 결과로 상처받은 이들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투신한다.
(한국에 온 첫 선교사 수녀들)



영성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떼를 구해 내겠다. 그들을 먹이고 쉬게 하겠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예제 34장 참조)
라는 말씀을 실천하려 한다. (수녀회 심볼)



나눔
성매매 피해자가 자립할 수 있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미혼모를 위한 시설과 그들의 자립을 도우는 곳, 가출 청소녀를 위한 쉼터와 여성 긴급전화1366,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위한 쉼터를 운영한다. 한국틴스타에 협력하며 '낙태치유피정'을 무료로 운영한다.
(가출청소녀를 위한 쉼터) www.rgskr.org  글 도희주 기자 / 사진 박세영 대건 안드레아


이 기사는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발행하는 간행물  7월호 외침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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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