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의 흑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철길 없는 간이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 춘포역(등록문화재 제210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 춘포역(등록문화재 제210호)

일제 수탈의 흑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철길없는 간이역

익산 춘포역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에 있는 한국철도공사 소유의 역사 건물이다. 이곳은 2005년 11월 11일에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되었다.




춘포역사는 전주 – 군산을 이어주는 27번 국도변에 자리하며, 1914년 11월 17일에 지은 107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처음에는 대장역(大場驛)이라는 이름으로 익산(당시 이리) - 전주 간 25.3km를 연결하는 전라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1996년에 춘포역으로 이름을 바꾸고 1997년에는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어 삼례역에서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 2009년 4월 1일 여객취급 중지와 결국 2011년 5월 13일 전라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폐역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춘포면에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근대역사문화유산들이 자리하고 아래로는 아름다운 만경강이 흐르고 있다. 익산 최대 곡창지인 춘포' 의 수탈 역사(歷史)를 대표하는 건물이 바로 이 역사(驛舍)다.


1914년에 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양쪽 방향으로 경사가 있는 지붕. 경사를 따라 빗물이 쉽게 배수되거나 눈이 지붕 위에 쌓이지 않고 흘러내리기 때문에 예로부터 많이 사용된 지붕 양식이다. 지붕의 면과 집의 끝면이 만나 이루는 단면을 '박공'이라고 하고, 그 벽을 박공벽이라고 부른다. 지붕이 끝벽보다 돌출된 유형과, 박공벽이 지붕보다 높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의 목조 구조 건물이다.



광장 쪽 출입구 위에는 캐노피(건축에서 제단·상·옥좌 등의 위에 기둥으로 받치거나 매달아놓은 덮개), 철로변에는 직교형 박공지붕이 돌출되는 등 군산 임피역사와 함께 일제강점기 당시 전형적인 소규모 철도역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으로 실어 나르고, 농사를 짓기 위한 물자가 역을 통해 들어 왔다. 화려했던 과거였지만, 철로 위의 추억을 간직하며 철도의 기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전라선에 있는 한적한 마을의 춘포역사. 지금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철도역사이다.

춘포역은 처음에는 대장역(大場驛)이라는 이름으로 익산(당시 이리)과 전주를 연결하는 전라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하였다. 당시 이 근처에 일본인 농장이 설립되면서 형성된 ‘대장촌’이라는 일본인 이민촌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했던 역사 가운데 하나이다. 대장이란 말이 생겨난 것은 일제강점기로, 일본사람들이 들이 넓다고 큰 대(大), 마당 장(場)자를 써서 대장촌이라고 했다.


이곳 춘포면은 식민지 통치의 잔재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대장촌, 중촌, 신촌 등 일본식 마을 명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곳은 쌀 촌, 등 다른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쌀 촌이라는 별명은 이곳에서 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면서 화물 운송량을 줄이기 위하여 이 대장정미소에서 8분 도로 도정 한 후 실어 갔던 곳이 춘포역이다. 춘포의 일제 수탈의 흔적은 호소가와 농장주 가옥, 에또가옥, 대장정미소 그리고 춘포역 등이 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 후 대륙과 소위 남양군도(南洋群島)의 정복을 위해서 군비증강의 군량미 병참기지를 염두에 두고 호남지방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였다. 이곳 김제평야와 옥구평야는 그들에게는 황금 같은 곡창지대였기에 더더욱 악랄한 착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시모토 농장사무실 - 전북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
*백구 금융조합 - 전북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월봉도정공장 - 전북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만경강의 상류 지류인 완주 고산천에서부터 제방을 높이고 직강공사(直江工事)를 실시하여 쌀 수확량 증산을 위한 무리한 공사를 강행하여 춘포역과 대야역에서 기차에 실어 군산 해망동 창고에 보관하여 일본으로 실어 갔다. 당시의 창고와 부잔교(浮棧橋:뜬 다리)가 찬탈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다.

이곳 춘포면 춘포리는 봄의 물가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쌀 수탈을 위해 철로를 놓으면서 춘포면의 중심지가 된 마을이다. 본래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 촌락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이 지역을 차지한 구마모토의 영주 호소카와가 이곳에 기차역을 세우면서 면의 중심지로 변모한 것이다. 본래의 중심지는 봉개산 부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택 몇 채만 붙어있는 외로운 마을이 되었다.


전라선이 쭉 뻗어있다.


호소카와 가옥 등록문화재 제211호

지금은 일반인이 거주하고 있다. (호소카와 가옥 등록문화재 제211호)



이웃의 익산역은 호남 철길의 요충지로 석탄 기차 정리하고 전철(電鐵)로 새로 단장하여 비 내리는 호남선과 고향 역은 노래비로 남겨두고 날로달로 발전하며, 임피역과 남원의 서도역은 역사(驛舍)보존을 위해 수리하였는데 춘포역은 점점 낡아만 간다. 무엇 때문에 철길은 후다닥 걷어내고 간이역에도 있을 법한 신호기 하나 없고, 100여년의 흔적을 서둘러 거두어 내었을까

역사앞에 몇미터의 철길만이라도 복원을 하여 그 옛날 일제의 수탈현장을 살아있는 역사의 장으로 만들어지길 고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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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