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투어시대에 돌아보는 조선 사대부의 여행법

코로나19 시대에는 갇혀 지내는 답답함이 일시적이나 조선시대에는 늘 그랬다. 장거리 여행은 비용 마련도 교통수단도 열악했다. 좁은 지역에 머물러 사는 것은 당연했고, 먼 곳을 여행하는 파격은 대개는 인생에서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일이었다.

旅行 온라인 투어시대에 돌아보는 조선 사대부의 여행법




너무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 틀어박혀 있었다. 조금만 건드리면 튈 것만 같이 집 밖을 벗어나 사방 어디로든 가고 싶은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 게다가 봄이 찾아오니 코로나19로 갇혀 지내야만 했던 답답함이 한꺼번에 폭발할 듯하다. 코로나19 시대에는 갇혀 지내는 답답함이 일시적이나 조선시대에는 늘 그랬다. 장거리 여행은 비용 마련도 교통수단도 열악했다. 좁은 지역에 머물러 사는 것은 당연했고, 먼 곳을 여행하는 파격은 대개는 인생에서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일이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사정이 크게 나아져 장거리 여행의 여건이 좋아졌고, 예전에 비하면 여행이 훨씬 더 흔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시대상을 반영한 선비들의 다채로운 여행법



여행이 흔한 것이 되자 여행과 관련한 갖가지 새로운 현상이 등장하였다. 그중 먼저 꼽을 만한 것은 새로운 방법을 동원한 여행이었다. 전과도 다르고, 남과도 다른 나만의 여행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여행을 더 즐겁고 더 색다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당시 도회지 사람들에게 장거리 여행보다 근거리 교외지역 여행이 각광받은 탓도 있었다. 근거리 명산이나 명소를 여행할 때는 계획을 잘 짜서 재미나게 여행하려고 애썼다.

엄경수(嚴慶遂, 1672~1718)는 1710년대에 배를 타고 한강 하류에서 상류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내려오는 특별한 여행을 기획하였다. 한강에 있는 누정을 두루 구경하는 일종의 특화된 주제 여행을 계획하여 실행하였고, 여행 뒤에는 『연강정사기(沿江亭榭記)』란 독특한 기행문을 썼다. 권상신(權常愼, 1759~1825)은 1784년 과거공부를 함께하는 친구들과 도회지 근교를 재미있게 여행할 계획을 세워 놀고 온 다음『봄나들이 규약(南皐春約)』 등을 남겼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친구들과 계획안을 장만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여행법이었다. 여행의 재미를 북돋우고 특별한 의미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여행하는 방법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새로운 여행법은 다채롭게 변한 시대상을 보여주었다.


01.실학자 서유구가 저술한『임원경제지』의 『이운지』는 여행용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 02.『이운지』에 ‘명승유연’으로 정리되어 있는 명승지와 여행용품 목록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



풍류를 즐기고자 번거로움도 감수하고 챙긴 다양한 도구

조선 후기의 여행법에서 눈여겨볼 대목의 하나는 여행도구의 발달이다. 앞에서 말한 권상신은 여행할 때 거문고, 투호를 비롯한 여러 가지 도구를 마련하여 산에 올랐다. 근교 여행이기에 산에 올라 음악도 연주하고 투호놀이도 하고 술도 마셨다. 하지만 일행이 준비해간 찬합과 술병, 우유 등 일반 도구와 물품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당연한 소지품이었기 때문이다. 멋지게 즐기기 위해 소풍 가는 사대부들이 갖가지 용품을 챙겨가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사용했거나 사용하기를 꿈꾸었던 여행용품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명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이운지(怡雲志)』 ‘명승유연(名勝遊衍)’이다.

여행용품을 설명한 이 문헌에서 명승유연(名勝遊衍)이란 ‘명승을 마음껏 노닌다’는 뜻이다. 명승을 멋지게 즐기기 위해서는 도구가 좋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썼다. 이 글은 여행도구(遊具), 등산용 부적 및 주문(登陟符呪), 기타 사항(雜纂) 세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많은 도구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어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벅차다.

각종 등산용 지팡이와 호리병에서부터 등산화, 약상자, 여행용 수레와 가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채로운데 그중에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 기발한 용품이 꽤 많다. 흥미로운 몇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다양한 휴대용 물품이다. 휴대용 술그릇과 차 도구, 향구, 찬합, 화로다. 당시에 산에 갈 때 술은 기본으로 챙겼고, 차와 향도 가지고 갔다. 지금은 대개 커피를 가지고 가지만 그 시대에는 각종 차를 가지고 가서 휴대용 화로에 불을 피워 차를 끓여 마셨다. 일상생활에서 차를 즐겨 마시지 않던 조선에서 저런 산행의 풍속이 있었으니 놀랍다. 술그릇도 한두 가지에 머물지 않는다. 조선 사람의 주합(酒盒) 가운데 기발한 고안품이 눈에 띈다. 직접 읽어보자.


03.‘명승유연’에 언급되어있는 여행용품 중 하나인 찬합 ©국립민속박물관

04.여행 중 놀이감으로 챙겨가라고 추천되어있는 투호 ©국립민속박물관

05.유유자적한 여행을 즐기기 위한 준비물인 향로 ©국립민속박물관


주합 뚜껑의 중앙에 세로로 작은 대롱(빨대)을 끼우되, 아래는 바닥에서 0.1척 정도 떨어지게 한다. 주합의 주둥이를 가져다 입술에 넣고 대롱을 빨면 술이 곧장 올라와 입으로 들어온다. 주합 양쪽 어깨에 고리를 만들고 여기에 가죽끈을 달아 하인에게 차게 하면 말 위에서도 빨아먹을 수 있으니, 번거롭게 술잔과 표주박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운지』4, 풍석문화재단, 2019, 398면.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어떤 장치인지 잘 알 수 있다. 커피나 주스를 빨대를 이용하여 마시는 것과 똑같이 술을 마신다. 게다가 말 위에서도 하인 허리에 찬 주합의 술을 빨대로 빨아 마신다. 이 독특한 음주법은 서유구의 저작인 『금화경독기』에서 인용한 조선의 음주법이다. 조선 사람의 못 말리는 술 애호가 기질을 잘 보여주는 재밌고 놀라운 발명품이다.

그밖에도 여행에서 요긴한 도구인 찬합(饌盒)도 눈길을 끈다. 찬합은 중국제와 일본제를 추천하였고, 특히 황금빛으로 옻칠한 일본제를 추천하였다. 부유층의 호사 취미를 한껏 드러낸다. 더 흥미로운 것은 위험한 등산에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간 다양한 부적이다. 또 주문을 외우는 방법과 도깨비를 물리치고 독충의 해를 입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하루종일 밥을 먹지 않고도 배고프지 않게 먼 길을 갈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한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여러 가지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설령 주술에 기댄 방법일지라도 흥미롭다.



06.중국에서 유입된 명승을 찾아가는 놀이인 남승도 ©국립중앙박물관

07.전국 88곳의 명승을 소개한 『팔선와유도』 ©국립중앙박물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여행 정보의 공유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다양한 용품과 여행을 안내하는 서적이 출현하였다. 여행을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 하나가 중국에서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다름 아닌 ‘남승도(攬勝圖)’ 여행법이다. 『이운지』에서 ‘명승유연’ 바로 다음에 소개한 내용이다. ‘남승도’란 말판 위에 명승지 목록을 그려놓고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대로 명승을 찾아가는 놀이다. 부루마블놀이와 유사한 이 놀이는 명승을 직접 찾아가지 않고 즐기는 방법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언택트 온라인 투어 형태로 여행을 소비하는 것과 취지가 비슷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여행법이 있기는 했다. 바로 와유(臥遊)다. 와유는 누워서 하는 여행이란 뜻으로 이 역시 언택트 온라인 투어의 과거형이다. 수많은 여행지를 다니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에 여행지를 다녀온 이들이 쓴 시문을 읽으면서 추체험(追體驗)으로 여행을 즐겼다. 시문으로 읽느냐 온라인으로 즐기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여행객들 사이에서 뒤섞여 즐기는 실제 여행이 아니라 고독하게 혼자서 상상으로 즐기는 여행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남승도’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고독한 여행이 아니라 몇 사람과 함께 놀이를 즐기면서 하는 여행이라는 점이다. ‘남승도’는 주사위를 던져서 전국의 명승을 찾아가는 과정과 결과를 즐기는 놀이였다. 놀이에 그치지 않고 찾아간 명승을 다양한 장르의 시와 산문으로 묘사한다는 점이 달랐다. 가까운 친구들과 창작 활동을 겸해서 즐긴 고급스러운 놀이였다. 본디 이 놀이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이운지』에 소개한 놀이도 바로 중국의 명승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수도 없는 외국의 명승을 상상하면서 즐기는 것이니 그 답답한 속은 짐작할 만하다. 18세기 중반 이후 이 놀이는 조선의 명승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로 널리 퍼졌다. 조선에서 널리 알려진 산과 강, 호수와 누정, 사찰과 고적 등 현재의 명승과도 거의 일치하는 이름난 명승 100여 곳이 대거 포함되었다.

대체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명승이 포함되지만 놀이하는 사람에 따라 수록한 명승에는 큰 편차가 있었다. 가고 싶고 높게 평가하는 명승, 실제로 다녀왔던 명승을 넣어서 놀고 작품을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국 88곳의 명승을 소개한 유본정(柳本正, 1807~1865)의 『팔선와유도(八仙臥遊圖)』가 가장 인상적인 사례이다. 이 책에 실린 기행문과 시를 보면, 정말 실제로 풍경을 앞에 두고 쓴 것처럼 생생하다.

대개는 예전에 가봤던 기억을 되살려 썼으나 어떤 경우에는 이전의 여행기나 남들이 전한 말을 듣고 썼다. 조건이 불리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집밖의 세계를 향한 욕망을 쉽게 누그러뜨리지는 않는다. 조선 후기에도 여행의 욕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색다른 방법과 용품과 대안으로 그 욕망을 채우려 하였다. 출처: 안대회(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