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에 흩어져 있는 고대의 장신구, 허리띠 장식

고대의 허리띠는 가죽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가죽은 모두 삭아 없어지고 가죽에 덧대어 장식한 금속판과 띠고리 등이 남아 전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에서 발견된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平壤 石巖里 金製 鉸具)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다양한 모양의 허리띠 장식이 남한 곳곳에서 흩어져 발견되고 있다.

남과 북에 흩어져 있는 고대의 장신구, 허리띠 장식

허리띠 장식 허리띠는 우리 민족의 복식에 필수요소이며 고조선에서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변천과정을 거쳐 발전하였다. 고대의 허리띠는 가죽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가죽은 모두 삭아 없어지고 가죽에 덧대어 장식한 금속판과 띠고리 등이 남아 전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에서 발견된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平壤 石巖里 金製 鉸具)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다양한 모양의 허리띠 장식이 남한 곳곳에서 흩어져 발견되고 있다.

01.섬세한 세공기술의 극치,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보 제98호)

02.경산시 신대리 1호 목관묘에서 출토된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 (보물 제2017호)


기원전 10세기 전후로 제작된 다양한 동물장식 띠고리

고조선과 부여국의 허리띠 장식은 매우 유사한데 동물장식의 청동, 금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주로 호랑이, 곰, 독수리, 말 등으로 호랑이와 곰은 고조선의 건국 설화에도 나타난다. 이 시기의 허리띠 장식은 스키타이 북방민족의 장식과도 유사하지만 힘센 동물이나 생활과 관계가 깊은 동물을 모티브로 하여 장신구를 제작하는 것은 고대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고조선, 부여의 허리띠 장식의 문양은 북방민족의 것과 공통점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방적으로 북방 문화를 수용하여 제작된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고조선의 높은 문화 수준이나 제작 시기 등으로 미루어 보면 오류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고조선의 청동 장신구와 무구류, 생활 용구는 호랑이, 곰, 말, 토끼, 사슴, 멧돼지, 개구리, 거북이를 비롯하여 해상동물인 가오리까지 북방민족의 유물에는 볼 수 없는 동물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서 넓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오히려 고조선의 동물장식 문화가 떠돌아다니는 북방민족에게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은 이유다. 고조선의 동물장식은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하여 제작되어 멸망기까지 나타나는데, 현재 중국의 내몽고자치구 적봉시 오한기 유적, 요녕성 능원시 삼관전자 유적, 능원시 오도하자 유적, 능원시 삼도하자 유적 등에서 동물장식과 동물장식 띠고리가 다수 출토되었다.


03.옛 고조선 땅인 중국 능원시 삼관전자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가오리장식

04.중국 능원시 오도하자 유적에서 출토된 고조선의 금제동물장식

05.고조선의 영토까지 짐작할 수 있는 중국 철령시 서풍현에서 출토된 동물장식 띠고리


섬세하고 화려한 세공기술의 극치,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세종실록』에 따르면 동부여의 해씨(해모수, 해부루, 해금와, 해대소)는 고조선 단군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부여국이 고조선과 혈연관계가 있는 국가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철령시 서풍현 유적에서 출토된 부여의 유물을 보면 장신구와 무구류 등이 고조선의 유물과 유사성이 많으며 특히 띠고리 장식도 거의 같은 계통이다. 기원후 1~2세기에 접어들면 한반도에는 가늘고 굴곡진 중국식 띠고리가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고, 특색있는 두 종류의 허리띠 고리가 출토된다. 평양지역의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平壤 石巖里 金製 鉸具)와 한반도 중부와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호랑이모양 띠고리(虎形帶鉤)와 말모양 띠고리(馬形帶鉤)다.

일제강점기에 평남 대동군 석암리 9호 무덤에서 출토된 금제 띠고리는 가로 9.4cm, 세로 6.4cm의 허리띠 고리로 금으로 만들어졌다. 이 유물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카라샤르성에서 출토된 금제 띠고리와 형태와 크기, 제작기법이 거의 동일하며 서진 말엽에 형주자사를 지낸 유홍의 무덤에서 출토된 금제 띠고리와도 유사하다. 석암리9호 무덤에서 출토된 금제 띠고리(국보 제98호)는 중국에서 제작되어 유입된 유물로 보는 견해와 중국에서 이주해온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견해가 있다. 무덤의 주인공은 한반도로 귀화한 중국의 귀족으로 추정되며 동반 출토된 유물들은 중국 한나라의 유물과 동일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두 견해 모두 가능성이 있다.

이 띠고리는 띠고리 크기의 얇은 금판을 만들고 나무나 밀납(蜜蠟)으로 문양의 틀을 조각한 후에 금판을 덧대고 두들겨서 금판이 문양 틀과 같은 무늬의 요철이 생기는 타출기법으로 만들었다. 인장력이 큰 금의 성질을 이용한 금속공예 기법으로 타출(打出)한 후에는 무늬대로 요철이 생긴 금판에 여러 장식을 누금기법(鏤金技法)으로 부착하여 화려함을 더했다.

금판의 세부 장식은 띠고리의 테두리 장식과 내부 문양의 경계선 구분을 위해 인발기법으로 뽑아낸 금실을 준비하고 뽑아낸 금실의 일부를 작게 잘라서 크고 작은 네 종류의 금 알갱이를 만들어 냈다. 또한 비취옥을 감입하기 위한 얇고 넓은 금실도 뽑아내어 작은 물방울처럼 생긴 보석을 붙이기 위해 잘라서 비취옥의 외곽선을 만들었다. 준비된 금실과 금 알갱이, 비취옥을 누금기법으로 부착하여 역동적인 7마리의 용문양 띠고리가 완성하였다. 띠고리의 테두리에는 기본 틀에 부착했던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으며 현재 기본 틀은 삭아서 없어진 상태이고 파란 비취옥은 7점이 남아있다.

06.남한 청주시 오송 유적에서 출토된 호랑이모양 띠고리

07.영천 어은동에서 출토된 청동말모양 띠고리와 청동호랑이말모양 띠고리

08.남한 연기군 응암리 주거지에서 출토된 말모양 띠고리



다양한 의미와 모양을 표현한 남한의 띠고리

이 시기에 한반도 중부와 남부에는 호랑이모양과 말모양 띠고리가 건물지와 무덤에서 출토되는데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다. 호랑이모양 띠고리는 영천 어은동 유적, 경산 신대리 유적, 청주 오송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고 말모양 띠고리는 영천 어은동 유적, 연기군 응암리 주거 유적, 천안 청당동 유적 5호 무덤, 아산 용두리 유적, 청주 송절동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호랑이모양 띠고리는 양발을 모으고 웅크리고 앉아서 포효하는 모습인데 크게 벌린 입속의 날카로운 이빨이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고 볼과 목, 허리에는 고조선의 다뉴세문경에도 보이는 기하학적 무늬를 장식하였다. 긴 꼬리는 엉덩이 위로 올라와서 말려있는데 청주 오송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특이하게 새끼 호랑이가 엉덩이 위에 올라탄 모습으로 모자의 정을 느낄 수 있다.

경북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보물 제2017호)는 영천 어은동에서 출토된 유물과 같은 모습이지만 보존상태가 더 양호하고 온전하다. 현존하는 호랑이모양 띠고리는 모두 8점 정도로 희귀하며 용맹을 상징하는 귀족들의 전유물로 보인다. 말모양 띠고리는 충남 연기군 응암리 주거유적에서 출토된 20여 점의 유물이 무덤이 아닌 주거지에서 출토된 사례로 의의가 크다. 주거지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띠고리가 단순 부장용이 아니고 평상시에 사용한 실용품이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말모양 띠고리는 충청지역과 경상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그 수량은 호랑이모양 띠고리보다 훨씬 많다. 충남 천안 청당동의 덧널무덤에서 말모양 띠고리가 11점이 함께 모여진 채로 출토되었고 그동안 출토된 말모양 띠고리는 약 90여 점에 이른다. 말모양 띠고리는 영천 어은동에서 출토된 유물이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삼각집선문의 걸개까지 온전하여 그 원형을 알 수 있다. 말의 목과 허리 부분은 호랑이모양 띠고리처럼 고조선의 기하학적 선 무늬를 넣었고 말고삐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동물모양 띠고리가 북방민족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으로 주장하는 이론이 있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제시된 경우는 없었고 주제가 같은 동물장식이라는 것에 기인한 추측에 불과하다.

현재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고조선, 부여의 동물장식과 띠고리, 기하학적인 선 문양의 청동유물들은 한반도에서 탄생한 동물장식 띠고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증거들이며 돌로 만든 양면 거푸집(石製鎔范)을 사용한 주조기법 또한 중국과는 다르다. 따라서 삼한(三韓)의 호랑이모양 띠고리와 말모양 띠고리는 고조선과 부여의 동물장식 청동기와 동물장식 띠고리의 맥을 이어서 탄생한 한민족 고유의 양식으로 볼 수 있다. 자료출처/ 김대환(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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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