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나타나는 극락極樂

불교에서 나타나는 극락極樂

≪아미타경 阿彌陀經≫에 의하면, 극락세계는 서방으로 기천만 기십만의 국토를 지나서 있는 곳이며, 현재 아미타불이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태어나는 사람은 몸과 마음에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이 있다. 이 세계는 일곱 겹의 난순(欄楯), 일곱 겹의 타아라나무기둥이 있고, 방울과 금·은·유리·수정의 사보(四寶)로 장식되어 있다. 이 네 가지 보석에 산호·마노·호박을 더한 칠보로 만든 연못이 있으며, 여기에는 여덟 가지 공덕을 구비한 물과 황금의 모래가 깔려 있다.



또한 하늘에서는 음악이 들리고 대지는 황금색으로 아름다우며, 주야로 세 번씩 천상의 꽃이 떨어진다. 백조·공작·앵무 등의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이 노래는 그대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노래로 이 노래를 듣는 자들은 모두 불·법·승의 삼보(三寶)를 생각한다. 이 새들은 모두가 아미타불에 의해 화작(化作)된 것이다. 이 국토에는 지옥·축생(畜生)·사신(死神)이라는 명칭이 없고,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阿羅漢)이 수없이 많으며, 다음 생에 부처가 될 사람도 한량이 없다.

극락을 일반적으로 서방정토라고 하는 것은 인도 사람들이 방위와 시간을 일치시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 사람들은 동쪽으로 서서 앞쪽을 과거, 뒤쪽을 미래라 한다. 따라서 극락은 내세에 왕생할 세계이며, 그것은 서방에 존재하였던 것이다.

또한 사바세계(娑婆世界)와의 거리를 ‘기천만 기십만’ 등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한역의 ≪아미타경≫에서는 십만 억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중국에서 상용된 최대의 숫자가 억이었기 때문에 먼 거리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세속적인 현실과 단절된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0만8000국토를 지나야 극락세계에 이른다는 설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승들은 이를 공간적인 거리로 보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십악(十惡)과 팔사(八邪)를 없애버리면 곧 극락이 된다고 본다. 곧 살생·도둑질·사음(邪婬)과 거짓말, 이간 붙이는 말, 악담, 유혹하며 속이는 말, 탐욕, 성냄과 어리석은 소견 등의 십악을 고쳐서 십선(十善)으로 바꾸고, 사견(邪見)·사사유(邪思惟)·사어(邪語)·사업(邪業)·사명(邪命)·사방편(邪方便)·사념(邪念)·사정(邪定) 등의 팔사를 팔정도(八正道)로 바꾸면 그곳이 곧 극락세계라고 본 것이다.

이는 ≪관무량수경 觀無量壽經≫의 ‘여기에서 멀지 않다[去此不遠].’는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극락세계에 대한 묘사는 물질적 낙토관(樂土觀)과 함께 심오한 종교적 관념과도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극락의 주재불인 아미타불이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사람을 구제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이타적인 면에서 중생제도를 사명으로 하는 대승불교의 보살도(菩薩道)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미타불은 법장보살(法藏菩薩)이었을 때 세운 사십팔원(四十八願)을 성취함으로써 부처가 되었고 극락세계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십팔원에 근거해서 볼 때, 극락의 왕생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면서 염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염불이 무아삼매(無我三昧)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극락은 현실의 사바세계와 공간적 거리를 갖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고승들은 사바세계가 곧 극락정토요, 현실세계와 극락세계가 불이(不二)라고 주장하였으며, 현실 속에서 극락세계의 실현을 희구하였던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선종·화엄종·천태종 등의 종파에서는 만법유심(萬法唯心)의 이치에 의해 자기 마음을 닦아 불성(佛性)을 깨닫는다는 취지 아래, 새로운 극락관인 자성미타유심정토설(自性彌陀唯心淨土說)을 주창하였다.

이는 자기 마음 가운데 본래 갖추어져 있는 성품이 아미타불과 다르지 않지만 미혹하면 범부가 되고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며, 아미타불이나 극락정토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마음 가운데 있다고 본 것이다.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수행법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것은 ≪관무량수경≫의 십육관법(十六觀法)과 ≪유마경 維摩經≫의 설이다. ≪유마경≫에서는 정토에 태어나는 길이 여덟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① 중생을 도와주되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중생을 대신하여 모든 고생을 달게 받을 것, ② 모든 중생에게 대하여 평등하게 겸손할 것, ③ 모든 사람을 부처님과 같이 공경할 것, ④ 모든 경전을 의심하지 않고 믿을 것, ⑤ 대승법(大乘法)을 믿을 것, ⑥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을 것, ⑦ 자신의 허물만 살피고 남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을 것, ⑧ 늘 온갖 공덕을 힘써 닦을 것 등이다.

그리고 정토의 종류로 17가지를 들고 있다. 직심(直心)·심심(深心)·육바라밀(六波羅蜜)·사무량심(四無量心)·사섭법(四攝法)·십선법(十善法:이는 하나로 함)의 어느 하나라도 완숙하게 성취하면 극락에 왕생한다는 정신적인 정토왕생관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이후로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는 정토신앙이 크게 성행하였다. 신라시대에는 교학적인 측면과 실천적인 측면이 함께 이루어졌으며, 고려시대에는 자성미타유심정토의 측면에서 종파별로 크게 신행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승속을 막론하고 내세에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신앙이 유행하였다. 따라서 사찰의 당우 중에도 극락전(極樂殿, 또는 無量壽殿)이 가장 중요한 법당으로 건립되었으며, 사찰 주위에도 안양교(安養橋)를 두는 등 극락과 관계된 많은 사항들이 수용되었다.

“안양(安養)·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불토(無量光佛土)·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한다. 극락은 즐거움만이 있는 곳이며, 이 즐거움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에 의해서 성취된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반야용선의 의미와 해설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이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죽어서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영계(靈界)의 바다를 건너 극락정토(極樂淨土)로 간다’고한다. 절 앞으로 물이 흐르는 개울을 세속(世俗)과 불국토(佛國土)를 구분 짓는 영계의 바다로 보는 것은 같은 이치다.

반야용선(般若龍船)이란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피안의 극락정토에 갈 때 탄다는 배를 말한다.
반야(般若)란 모든 미혹(迷惑)을 끊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이나 모든 법을 통달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뜻하고 있다.

반야용선도는 망자를 위해 걸었던 그림으로, 그림에는 보통 좌로부터 극락의 주인인 아미타부처, 극락으로 인도하는 깃발을 든 인로왕보살, 반야용선과 망자가 표현되며 슬픔에 젖은 유가족이 그려지기도 한다. 즉 반야용선이 그려진 것은 망자가 아미타 부처가 계시는 서방극락정토에 왕생(往生)하기를 염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야(般若)는 - 인도의 고대 언어다. 이것을 한문으로 소리 나는 그대로 옮긴 것이다.
뜻은 '지혜(智慧)'라고 번역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의 도리를 분명히 뚫어 보는 깊은 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 함은 생사의 苦海를 건너는 배 - 그냥 '배'가 아닌, 용과 같은 배(용은 비바람을 부리고 다스린다)를 의미한다. 주로 절에서 '천도재'를 지낼 때 마지막에 태워 보낼 때 사용하게 된다.

<반야용선에 관한 기록>
*금강산 건봉사 사적(金剛山 乾鳳寺 事蹟)
경덕왕 17년,758년에 발징 법사(發徵 法師)가 미타만일회(彌陀萬日會)를 설(設)하였다. 29년만인 병인년(丙寅年 786년)에 31명이 육신등공(肉身騰 空)한 실적(實蹟)이 전사(傳史)에 자세히 실려 있다. 발징 대화상이 큰 서원을 발하여 31명을 청하여 미타만일회를 설하고 향도(香徒) 1828명을 맺었다....29년만인 병인년(786년)7월 17일 한 밤중에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 두 보살님이 자금연대(紫金蓮臺)를 타시고 문 앞에 이르러 금색 팔을 펴고 염불하는 대중을 맞이하였다. 부처님은 대중을 거느리고 반야선(般若船)에 올라 48원을 부르면서 백련화세계로 가서 상품상생(上品上生)을 명하였다....동량(棟樑)은 31명의 스님을 가서 본즉 육신등화(肉身騰化)하였다....향도가(香徒家)를 두루 다니니 913명은 도량의 스님과 같은 시간에 단정히 앉아서 왕생하였고,...또 7일째 되는 한밤중에 아미타불께서 다시 배를 타고 오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래 세운 원력 때문에 너를 맞이하여 같이 가야겠다"....동량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그 발에 절한 후 배를 타고 서방정토로 왕생하였다.
- 신라미타정토사상연구(민족사 출판,223~225쪽) -

*염불겸송경왕생과(念佛兼誦經往生科)
양(梁)나라때 도진법사(道珍法師)가 열반경을 강의하다가 참선 중에 홀연히 해상(海上)으로 수백 명이 보선(寶船)을 타고 지나감을 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는데, 극락국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같이 왕생하기를 간청하였더니 "법사는 비록 강경은 하고 있으나 미타경(彌陀經)을 읽지 않았으니,어찌 같이 왕생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강의를 폐하고 염불하여 약 1년 후에 곧 극락왕생 하였다고 한다.
- 한국정토사상연구(동국대출판부,불교문화원엮음,206쪽) - / -왕생집(도서출판여래,30쪽)-
*유통지(劉通志)
대명(大明)의 유통지는 염불을 간절히 하였다. 그때 이웃 사람인 이백재가 먼저 죽었는데 통(通)이 아침에 숨이 넘어갔다가 정오가 되어 다시 소생하여 가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마침 배 한척을 발견하였는데 정토로 간다 하더군, 배에는 36명이 타고 있었어, 백재도 있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내가 그랬지, 옷을 갈아입고 염주를 가져 올테니 잠시 배를 기다려 달라고 ." 가족들이 급히 옷을 갈아입히고 목에 염주를 걸어 주었더니 잠시 후에 갔다.
- 왕생집(164쪽) -

통도사 극락보전 반야용선
경남 양산 통도사의 극락보전에 그려진 ‘반야용선접인도(般若龍船接引圖)’는 반야용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용처럼 생긴 배의 앞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안내하는 인로왕보살이 합장을 하고 있고, 뒤에는 중생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해주는 지장보살이 고리가 여섯 달린 지팡이인 육환장을 들고 서 있다. 배의 가운데는 비구와 아낙, 선비, 노인 등 신분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결같은 표정으로 극락왕생한다는 기대에 젖어 있다. 이들을 감싸고 있는 지붕은 마치 인도의 초기 스투파(탑)를 닮았다. 스투파란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무덤이니, 곧 그림 속의 지붕은 중생을 보호하는 부처를 상징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이 용선이 지나는 강이 단순한 강이 아니라 지옥세계에서 천국으로 건너가는 강으로 볼 수 있고. 배에 탄 사람은 지옥에서 죄업을 다하고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에 의해 구원받은 중생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고약한 사공은 지옥의 염라대왕이나 어지러운 현세 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면,,, 그때의 기분을 어떨까? 희열과 광분일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과 참회를 끝낸 뒤 평온함과 감사, 그리고 차분히 불법에 귀의하기 위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운문사 비로전 반야용선과 악착보살 조각
운문사 비로전 천장을 올려다보면 반야용선과 그 반야용선에 매달려 있는 악착보살....이름 그대로 이 生에 기필코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악착같이 정진하는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
악착보살이 외줄에 매달린 것은 오로지 수행자로서의 일념으로 한길만을 걷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제천 신륵사 극락전 반야용선
반야용선도는 망자를 위해 걸었던 그림으로, 그림에는 보통 좌로부터 극락의 주인인 아미타부처, 극락으로 인도하는 깃발을 든 인로왕보살, 반야용선과 망자가 표현되며 슬픔에 젖은 유가족이 그려지기도 한다. 즉 반야용선이 그려진 것은 망자가 아미타 부처가 계시는 서방극락정토에 왕생(往生)하기를 염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합천 해인사 반야용선


영주 부석사 지장전 반야용선



모든 절집들이 다 그렇지만 보물 396호인 흥국사 대웅전 혹은 해남의 미황사가 대표적인 반야용선(般若龍船)의 형상을 하고 있다.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 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법당 앞에 있는 석등(石燈)이 거북이 등에 올라있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창녕 화왕산 관룡사(觀龍寺)는 ‘용을 보았다는 절’이라는 뜻이다. 588년(583년) 원효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신라 8대 종찰의 하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인 보물 295호 석조석가여래좌상이 관룡사 근처의 용선대에 있다 용선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일컫는다. 반야용선은 반야의 지혜로 사바의 고해를 건너 열반으로 가는 배로 용이 이끈다. 용선대에서 아래 펼쳐지는 산줄기들을 바라보면 마치 ‘자연법당’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구름이 덮인 산자락은 험난한 파도를 일으키는 바다와 같아서 중생들이 세파를 넘어서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여기서 부처님은 반야용선의 선장님인 것이다.

‘반야’(般若)는 ‘진리를 깨달은 지혜’를 말하며, ‘바라밀다’는 ‘피안의 세계로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탈 것이 필요하다. <금강경>에서는 피안으로 향하는 탈 것을 뗏목에 비유하였으며 뗏목은 배와 상통한다. 법당은 불자들이 부처님과 함께 타고 가는 배의 선실과 같은 곳이다. 그리고 그 배가 향해 가는 곳은 바로 피안의 극락정이다.

대웅전에는 반야용선을 표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미황사의 아름다운 주초석, 부처님이 앉아계신 좌우 기둥의 짐승(물에사는 것), 계단의 용, 대웅전내외의 용은 모두 반야용선을 의미한다. 대웅전뿐만 아니라 연자루나 환선정에도 반야용선을 나타 내었다.


권영한의 <우리사찰의 벽화 이야기>에는 재밌는 이야기도 있다.

비사오강은 작은강이지만 배가 없으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그 강의 뱃사공은 뱃삯을 선불로 주지 않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 그 강을 건네주지 않았다. 그래서 보타산에 향을 올리러 가는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보타산을 눈앞에 두고서도 건너지 못하고 탄식만 할뿐이었다. 하루는 매우 궁해 보이는 스님 한분이 배를 타려하자 사공이 뱃삯을 요구했다.


스님은 간곡히 청했다
"우리같이 궁한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배를 못타면 범음동에 있는 관음보살의 성상을 보지 못하니 제발 태워주게" 라고 애원하자
"스님만 못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안내면 누구를 막론하고 태워줄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이에 스님이 "내가 지독한 너의 배를 타지 않고 이 강을 건너가는지 못 가는지 보아라" 하면서 강변의 모래를 한주먹 쥐고 강물에 뿌리니 커다란 배 한척이 갑자기 생겨났다. 그 스님은 돈 없어 못 건너던 많은 사람을 태우고 범음동에 가서 예배를 올렸다. 그리고는 온데간데없으므로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이 신통력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하였다. 모래를 날려 배가 되었기에 그 강을 그때부터 비사오강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 강은 인도 남쪽해안에 있는 타락가산 기슭에 흐르는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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