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성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서울에서 1시간거리의 볼거리 먹거리 그리고 우리의 역사적인 고증을 거친 여주 파사성을 하루코스로 추천한다.

파사성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서울에서 1시간거리의  볼거리 먹거리 그리고 우리의 역사적인 고증을 거친 여주 파사성을 하루코스로  추천한다.


파사성은 신라의 제5대 왕 파사왕(80~112) 당시 축성되었다는 설과 아련한 전설이 깃들어 있는 산성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임진왜란 때 새로 쌓은 것이다. 당시 지정학적, 군사적으로 매우 요충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5대 파사왕 때 남녀 두 장군이 내기를 하였는데 남장군은 나막신을 신고 중국에 다녀오고, 여장군은 파사성을 쌓기로 하였는데 여장군이 성을 다 쌓기 전에 남장군이 먼저 중국에서 돌아왔다. 여장군은 개군면 석장리까지 가서 돌을 치마폭에 담아오던 중 이 소식을 듣고 놀라 치마폭이 찢어지면서 돌이 떨어져서 그 마을에 돌담이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파사성은 미완성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설은 당시 신라의 영역은 경남 거창, 경북 청도와 경주 주위에 불과했고 이 지역은 백제의 영역이었으므로 파사왕이란 신라의 왕과 유사한 이름 때문에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본다.

파사국((婆裟國)의 성이라는 설도 있다. 파사국은 중국 고서에 나오는 페르시아(이란)를 말하는데 고대 한반도에 기록으로 남은 것이 없어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여러 차례 발굴 조사를 한 결과 성안에서 발견된 유물이나 성벽의 쌓기 방식, 성문의 형태 등으로 볼 때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백제 유물도 적잖게 나와 백제의 축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유성룡의 건의에 따라 승군 총섭 위엄이 승군을 동원하여 1592년(선조 25년)부터 3년에 걸쳐 옹성과 장대, 군기소까지 갖춘 성으로 전체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남아있는 성벽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다시 쌓은 것이며, 처음 쌓은 성벽은 성벽 하단부와 조선시대 성벽 안쪽에서 일부 확인된다. 파사성은 청동기 시대에는 주거지로 사용되다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성곽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성곽으로 사용했다.


파사성은 여주시 대신면과 양평군 개군면에 걸쳐있다. 대신면 천서1리에서 오르면 남문이, 천서2리에서 오르면 동문이, 양평 상자포리에서 오르면 마애여래입상 쪽으로 오르게 된다. 남문으로 오르는 길은 파사성 주차장에서 바로 시작된다. 국가 사적 제251호인 파사성에 대한 안내판과 함께 정상까지 860m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높이 230m밖에 안 되는 산이지만 들목에서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다. 흙과 자갈이 섞여 있는 숲길을 쉬엄쉬엄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남문이 나온다. 남문 안으로 들어가니 쉼터와 화장실이 보인다. 왼쪽 길로 330m 가면 정상, 오른쪽 길로 430m 가면 동문터가 나온다.

길게 이어진 성곽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다 뒤돌아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남한강의 유장한 푸른 물줄기와 이포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라 사진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포인트다.

남한강 동쪽에 있는 파사성의 둘레는 1,800m, 최대 높이는 6.5m로 큰 성이다. 한강의 수상교통과 중부내륙의 육상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포대교 주변의 넓은 한강 유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으며 일부 구간은 최근에 복원했다.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주요 지점에는 치와 포루터가 있으며, 동문과 남문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남문터에는 문루와 팔각 주춧돌, 불에 탄 성문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성안에서는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러 시기의 건물터가 확인되어 파사성이 오랜 기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파사성 오르는 길

 

파사성
낙조의 남한강과 이포보



여주 8경 중 하나가 파사과우(婆娑過雨)다.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을 말한다. 파사성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다. 조선시대의 문인 서애 유성룡이 파사성에 대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파사성(婆娑城) 서애 유성룡 (西厓 柳成龍)

파사성 위에는 풀이 무성하고(婆娑城上草芊芊)
파사성 아래에는 물이 굽어 흐르네(婆娑城下水縈廻)
봄바람은 날마다 끝없이 불어오고(春風日日吹不斷)
떨어지는 붉은 꽃잎 무수히 성 모퉁이에 흩날리네(落紅無數飛城隈)
도인의 신령한 눈 하늘의 진리 살피고(道人神眼覷天奧)
하룻밤에 천지가 다 타고 남은 재가 생겼구나(夜昆明生刦灰)
금강역사 백만이 지휘를 받드니(金剛百萬奉指揮)
큰 칼 긴 휘파람 불며 강의 누대에 서 있다.(尺劍長嘯臨江臺)

암벽에 새긴 거대한 마애여래입상


파사성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600여 미터 가면 마애여래입상과 수호사가 나온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1호 마애여래입상은 커다란 암벽 가운데에 새긴 높이 5.5m의 거대한 마애불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이 바위를 ‘장군바위’라고 부르는데, 이 마애불이 산성을 쌓은 장군의 초상이라는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마애불은 규모가 대단히 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는다. 바위의 암질이 단단해서 깊이 있는 조각을 하기 어려웠던지 얕은 선각으로 윤곽선만 간신히 새겨 마치 바위에 그린 그림처럼 보인다. 입체감은 없어도 마멸된 부분이 적어서 형체는 잘 남아있다. 이천 영월암의 마애여래입상과도 유사한 점이 많고 주변에 기와 조각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과거 파사성과 관련된 사찰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표현양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당남리섬, 이포보전망대, 천서리막국수

당남리섬은 경관농업단지로 섬의 총면적이 305,437㎡(약 9만2천 평)나 되는데, 봄과 가을이면 ‘꽃섬’으로 변한다. 5월은 유채꽃, 6월은 금계국과 꽃양귀비, 9월은 메밀과 코스모스가 들판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꽃밭과 함께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산책하거나 자전거 타기에 좋다. 피크닉장, 자연학습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축구장, 농구장, 야구장, 족구장까지 갖추고 있다.
이포보는 백로의 날개 위에 7개의 알을 올려놓은 독특한 형상이다. ‘생명의 탄생과 비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4대강 16보 중 가장 아름다운 보로 꼽는다. 이포보 전망대는 멀리서 보면 한 척의 돛단배 모양이다. 전망대 1층은 문화광장, 2층은 북카페와 카페테리아, 3층은 전망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남한강과 이포보, 수문, 이포대교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여주의 천서리막국수는 새콤한 물막국수와 매콤한 비빔막국수가 유명해 사시사철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먹거리촌이다.


천서리 표지비
천서리 막국수

이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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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