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해 보이지만 옹골찬 한국의 담

엉성해 보이지만 옹골찬 한국의 담

 

어긋남의 미학

 

많은 영역 확보 또는 영역 표시의 수단으로 시작되어 재산 소유욕의 대상 또는 신변의 방어와 보호 수단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또한 몸의 편안함과 마음의 여유를 주고 타인의 시선을 차단하여 사생활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담이란 집의 일부분이며 집을 보호하고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이다.  흙담이든  돌담이든 사람이 필요로 해서 만들었고 돌 하나하나마다 사람의 손길이 간다.  즉 담은 사람이 만든 인공구조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담을 자연 처럼 인식한다.  삶의 터전을 이뤄주는 우리 담을 살펴본다.

우리의 담은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주재료이다.  돌담은 구하기 쉬운 돌과 흙으로 만든 가장 단순한 시공 방식과 구조를 보여준다. 가장 원시적이고 허술해 보이지만 이 형식으로 지은 담은 이 시대에도 건재하다.

 

01, 부산 범어사 담장 (이미지투데이)     02. 전주 한옥마을의 옛 담장 (위키백과)

03. 밭에서 걷어낸 돌들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고 전하는 제주도 밭담 (이미지투데이)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의 돌담은 사다리꼴 형태로 축조되었다.  기초부터 3분의 2 지점의 높이까지는 두 겹으로 어긋나게 물림의 기법으로 쌓았고, 그 위쪽은 한 겹으로 쌓아 안정감을 더하였다.  불안하고 엉성해 보이지만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건재한 구림마을 돌담을 보며 우리는 어긋남의 미학을 배울 수 있다.  이번에는 강원도의 돌담을 보자.  사다리꼴 형태는 전라남도와 같으나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큰 돌이 담장 상부에 올려진 특징을 보인다.  석공 문종녕 씨의 의견에 따르면 이러한 구성은 돌의 크기보다는 무게중심을 고려한 설계일 가능성이 크다. 외관상으로는 불안정해 보이는 데 반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지역 특색이 담긴 돌담

 

제주도에는 밭담이라는 담이 있다.  밭담은 밭의 가장자리를 돌로 쌓은 둑을 말하는데,  밭에서 걷어낸 돌들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쌓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제주 밭담은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부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 길이가 2만 2,000여km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밭담은 밭의 경계가 될 뿐만 아니라 바람과 방목하는 마소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는데,  얼기설기 쌓아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덕분에 잦은 태풍에도 잘 쓰러지지 않는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지금은 돌담을 쌓는 전문 석수가 기계를 이용해 돌담을 쌓지만 과거에는 농부가 농사의 일부로 밭담을 쌓았고 그러기에 석수일도 겸했다고 할 수 있다 .

 

제주도에서 사라져가는 담 중 ‘불턱’이라는 담장은 해녀들의 탈의장 겸 바람을 피하는 휴식처이면서 작업할 때 필요한 도구 및 음식과 옷가지를 보관하는 보관소 역할까지 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불턱은 현대식 탈의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지역에서 보존하는 담장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우물 담장도 상수도의 발전에 의해 불턱과 마찬가지로 방치되거나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전통 담장들이 개발과 변화로 사라져가는 모습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국가에서 쌓기석공(석수) 문화재수리기능자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옛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석공들과 연구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할 나위 없다.

 

삶의 모습과 자연을 닮은 담

 

흙담은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함께 이용했기에 종류도 다양하다.  오로지 흙만 사용해 다져서 쌓는 것과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담, 흙과 수수대 또는 싸리가지를 섞어 쌓은 담, 수명이 다 되어 교체한 기와를 재활용한 와담 등이 있다.

판축담은 흙 한 가지만 가지고 다져 쌓아올린 담으로, 두꺼운 송판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양옆에 대고 석회와 여물을 질지 않게 배합한 다음 달고질(달고(達古)를 이용하여 땅을 견고하게 하는 일)을 하여 다져 축조하는 방식이다.

 

04. 수명이 다 되어 교체한 기와를 재활용한 와담  (사진 이재균)

05. 빗물의 국영을 방지하기 위해 담장의 아랫부분에 물을 뚫고 안정감을 위해 곳곳에 큰 볼을 물이 축소한

고성 왕곡마을 담장 (문화재청)

06.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여성 전용 공간으로 꽃담이 화려한 경복궁 자경전 (문화재청)

07. 경복궁 자경전의 십장생굴뚝 (사진 이재균)

 

토석담은 흙에 모래와 석회 그리고 짚여물을 넣고 잘 반죽하여 쌓아올린 담으로,  수분은 충분하되 너무 질지 않게 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 담장은 빗물의 고임을 방지하기 위해 담장의 아랫부분에 돌을 놓고 안정감을 위해 곳곳에 큰 돌을 놓아 축조하였다.  매우 짜임새 있게 축조한 토석담이다.  왕곡마을에는 헛간으로 보이는 초가집과 연결하여 쌓은 담도 볼 수 있는데 아랫부분에 유난히 촘촘하게 돌들을 맞춰 넣어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담은 흙이 좋은 지역, 돌이 좋은 지역 등 지역적인 여건에 따라 그 구조와 축조 방식이 달리 형성되었다.

 

풍경이 되는 담

 

꽃담은 화장벽돌을 이용해 각종 문양을 베풀어 쌓은 담장이다.  담장뿐만 아니라 합각, 굴뚝에 꽃무늬로 장식한 것도 꽃담에 포함된다.

 

경복궁 자경전은 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여성 전용 공간으로 꽃담이 화려하다.  하단에는 사괴석을 몇 단 놓고 화장벽돌로 문양을 연출했는데 무시무종무늬를 비롯해 수복강령을 의미하는 문자무늬, 장수를 뜻하는 귀갑무늬가 있고 목단을 비롯한 각종 꽃을 별도로 화판에 새겨 넣기도 하였다.  화려한 꽃담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꽃담은 주로 여성들이 기거하는 공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창덕궁 낙선재에도 꽃담이 있다.  낙선재 뒤편에는 화초와 석물, 굴뚝, 꽃담 등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정원이 있는데 이를 ‘화계’라 한다.  봄이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과단과 각종 무늬가 수놓인 꽃담이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한편, 창덕궁 상량정과 승화루 사이에 있는 꽃담은 담장에 벽돌로 만든 동그란 월문(月門)까지 설치하여 화려함을 더한다.  시대의 흐름과 문화의 변천은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의 담 역시 현대화의 흐름에 맞춰 점점 변화하고 있다.  담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구분’의 역할을 한다.  작게는 내가 거주하는 집의 담, 크게는 행정구역의 담, 더 나아가서는 국경의 담이 존재한다. 즉 담으로 인해 집의 안과 밖이 구분되고, 국경이 구분된다.  남과 북이 마음의 담을 열어 더 넓고 견고한 대한민국의 담을 축조하기를 열망한다.   글. 이재균(한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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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