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여름나기 6

고양 미꾸라지 털레기

건강하게 여름나기 6

고양 미꾸라지 털레기

고양의 미꾸라지 털레기는 통째로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꾸라지를 넣고 끓이다가 고추장을 푼 물에 채소를 탈탈 털어 넣는다. 그래서 ‘미꾸라지 털레기’라고 부른다. 미꾸라지는 여름뿐만 아니라 봄, 가을에도 잡았다. 겨울에는 논두렁의 진흙을 파서 잠자던 미꾸라지를 꺼내 먹기도 했다.



오래되지 않았다. 30년 전만 해도 고양의 논두렁에는 싱아가 있었다. 먹을 것이 흔치 않던 시절 논두렁을 돌아다니며 싱아를 똑똑 따먹었다. 큰 수로의 진흙에는 갈게도 숨어 있다. 게구멍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가는 눈물을 빼게 된다. 장마 때는 마당 한가득 미꾸라지들이 꼬무락거릴 때도 있었다. 어른들은 하늘에서 미꾸라지가 떨어졌다며 아이들을 놀렸다. 논두렁을 타고 올라온 것인 줄 알면서도 허기진 날에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말복이 지나면 벼의 이삭이 세 살이 된다. 벼 이삭이 패기 시작할 때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논의 물을 빼야 한다. 논물이 자작자작해질 때, 동네 꼬맹이들은 뜰채를 들고 논에 모였다. 미꾸라지를 잡으려는 것이다.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미꾸라지를 뜰채로 떠서 그릇에 쏟아붓는다. 손을 재게 움직이면 덩달아 신이 났다. 하도 흔하니 돼지와 닭의 먹이로도 주었다. 영악한 아이들은 그것을 들고 장에 나가 엿과 바꿔 먹었다.

뜨거운 여름날의 천렵은 놀이와 같다. 미꾸라지의 길목에 투망을 치고 기다리면 시커먼 미꾸라지들이 한가득 걸렸다. 냄비와 고추장만 있으면 된다. 채소는 지천에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운 좋게 준비한 마른국수를 살살 펼쳐 끓이면 배가 불룩해진다. 그렇게 천렵 몇 번을 다니면서 여름은 쉽게 지나갔다.

고양의 미꾸라지 조리법은 독특하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요리한다. 미꾸라지를 넣고 끓이다가 고추장을 푼 물에 채소를 탈탈 털어 넣는다. 그래서 ‘미꾸라지 털레기’라고 부른다. 미꾸라지는 여름뿐만 아니라 봄, 가을에도 잡았다. 겨울에는 논두렁의 진흙을 파서 잠자던 미꾸라지를 꺼내 먹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사철 먹었던 것도 같다.

아버님이 투망을 잘 치셔. 친구분들을 그냥 너무 좋아하셔서 대여섯 명이 죄 오시는 거야. 그러면서 ‘애미야, 털레기 끓여라.’ 그때는 까만 무쇠솥이 있었어요. 집에 있는 채소를 다 집어넣고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거야. 우리 어머니가 고추장을 잘 담그셨거든. 당시 이만한 항아리로 네 말, 일 년에 두 항아리를 없앴어.
가을 미꾸라지는 알이 차서 더욱 맛이 있다. 미꾸라지는 단백질과 칼슘, 무기질이 풍부하여 무더운 여름 내내 잃었던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미꾸라지의 맛을 아는 이들은 미꾸라지 털레기를 먹기 위해 고양의 작은 골목을 찾는다.

아버님 덕분에 식당을 차리고 어머님의 장맛 덕분에 장사를 잘 할 수 있었다. 동화식당의 노부부는 얼마 전 87세를 일기로 하여 떠난 노모가 그립다. 노모의 손맛에는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20여 년 동안 자연산 미꾸라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아들도, 어머니의 장맛을 지켜보던 며느리도 이제 육십이 넘었다. 미꾸라지 털레기 맛의 비밀은 구수한 장맛이다. 거기에 오랜 시간 치댄 쫄깃한 수제비.

“이 사람 손봐, 다 구부려졌어.” 아내의 손을 잡는 남편의 손도 거칠기는 마찬가지인데. 노부부의 모습을 보니 그 장맛, 미꾸라지 털레기를 오랫동안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의 웃음이 나온다.

고양 미꾸라지털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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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